1.
이 책을 읽게 된 공로를 아내에게 돌려야겠다. 어느 날 보니 아내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 에세이인 <먼 북소리>를 읽고 있었다. 왜 하필 아내가 그 책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난 꽤 놀랐다. 그 책은 내가 내 청년 시절을 지배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릴 심산으로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난 내가 가지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모두 책장에서 꺼낸 뒤 거실에 있는 서랍장의 제일 아래쪽 구석에 밀어 넣었다. 난 그간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상당한 양의 책을 끌고 다녔는데, 이제 그중 적지 않은 책을 팔거나 버릴 생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동안 사 모았던,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책들까지 모두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난 버릴 책들을 거실의 서랍장에 넣어 두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렇게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그 구석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권 꺼내 집어 든 것이다.
지금도 난 왜 아내가 책장에 있는 책이 아니라, 내가 팔리지 않으면 버릴 거라고 말해 두었던 책 중에서, 그것도 꺼내기 어려운 곳에 밀어 넣어둔 한 권의 책을, 그것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집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물어보아도 아내는 그저 '별생각 없이' 그랬다고 말할 것 같았다.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인지, 설명하기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ㅡ프로이트의 해석대로ㅡ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던 심리가 그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는 물론ㅡ물어보지 않았으므로ㅡ알 수 없다. 어쩌면 오래전에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했기 때문일까?
아내는 균형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결별을 선언하는 순간, 아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을 읽어 봐야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결심하게 되었을 수 있다. 아내는 베스트셀러는 물론, 내가 극찬하는 소설이나 수필에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신만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듯했다. 아내가 사택에서 <군주론>을 읽던 그 시절처럼.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체로 독자의 마음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아내는 쓸쓸함보다는 밝은 걸 좋아한다.
문득 오래전 아내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엔 가벼움이 떠도는데 난 그런 점이 좋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가벼움과 밝음, 비슷한 속성이다. 게다가 아내는 균형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래서 아내는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몸을 구부리고는 팔을 뻗어 이 책을 서랍장에서 꺼낸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내가 아내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내 삶 전반을 휘어잡았던 시기에 대해 떠들어댔을 때, 그의 소설에 박한 평가를 했을 때, 그때 아내의 마음에 슬몃 들어찼던 결심이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버려야겠다고 말한 순간 아내에게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남편이 저 책을 버리기 전에 얼른 읽어야겠어.' 아마도 그렇게.
2.
<먼 북소리>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었다. 난 제목만 보고는 소설일 거로 생각했다. 수필이란 것도 아내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아내는 그간 자기가 읽었던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을 내게 소상히 이야기했다. 식사 도중에 책을 펴 들고는 몇 구절을 따라 읽어 줄 정도였다. 유럽 여행기였기에 여러모로 감정이입이 되는 듯했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아내와 함께 몇 년간 남부 유럽에 머물렀던 듯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말했다. "그런데 하루키가 자기 아내 이야기는 별로 안 하지? 하루키는 수필에서 아내 이야기를 거의 안 하더라고."
난 그간의 경험으로 넌지시 물었다. 아내는 그렇다고 했다. 하루키가 아내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고 했다.
"맞아, 아내 이야기를 조금 하기는 하는데,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더라."
"그런데 아내를 좋게 이야기하진 않지? 뭐랄까, 자기가 아내한테 구박받는다는 느낌으로 쓰지 않았어? 하루키가 아내 이야기를 아주 가끔 하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좋게 이야기하진 않더라고. 그 책에서도 그래?" 내가 다시 물었다.
아내는 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보이는 부분을 몇 차례 읽어 주었다. 아내와의 갈등, 아내와의 성격 차이, 자신은 되는 대로 사는데 아내는 엄격하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렇게 읽어주는 아내의 모습은 다소 들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내를 왜 그렇게 박하게 적어 두었을까? 난 내 오랜 의문을 아내에게 화두로 던져주고 싶었다. 아내가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곧 본연의 식사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내가 <먼 북소리>를 다 읽었다고 말했다. 난 아내에게 그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물었다. 내 물음에 아내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소설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아내의 평은 대개 한 줄이고, 길아야 세 줄을 넘기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한 줄 평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 줄로 줄이는 것,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나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듣는 처지에선 상상력이 꽤 필요하다.
아내가 알게 되었다는 소설가의 생각이란 무엇일까? 아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랑스 병사들이 러시아 군대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다리를 불태우는 일련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를 읽어낸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위해 많은 걸 포기했으며 그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는 걸 알아냈을까? 소설가의 독설이 그의 서정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될 수도 있음을 읽어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한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려 시도했음을 보았을까? 난 묻지 않는다. 물어야 소용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그저 상상해볼 따름이다.
<먼 북소리>를 읽으며 아내는 소설가를 궁금해했고, 난 소설가의 아내를 궁금해했으며, 그 둘은 몇 가지 공통점만으로도 유사하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너무나도 다른 별개의 존재였다. 우린 그 별개의 존재를 한 걸음 옆에 두고 유심히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고자 입을 반쯤 열었다가 다문다. 우린 고개를 돌려 한동안 앞을 바라본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마치 혼자인 듯이. 그러다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조각 케이크 한 개를 우연히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