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꾸며둔 무대

by 김영욱

아내와 본격적으로 교제하기 전의 일이다. 당시 난 어떤 일로 바로 내 위층에 살던 아내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데, 그때 아내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난 왜 <군주론>을 읽고 있는지 물었고 아내는 궁금해서 읽는다는 식으로 답했다. 개인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이 쉬는 시간에 읽을 책으로 <군주론>을 선택했다는 것에서 난 여러 인상을 떠올렸다.

책상 쪽을 보고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필통과 책상을 둘러싸고 있는 세 방향의 벽면에는 짧은 격언을 적어둔 여러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도 학창 시절 온갖 곳에 격언이나 암기할 것을 붙여 놓고 살았던 적이 있어 순간적으로 기억의 교차가 일어났다. 난 아내가 벽에 붙여놓은 격언들에ㅡ무슨 격언이었는지 기억은 나진 않지만ㅡ좋은 인상을 받았다. 비슷하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끼리끼리 노는 법이고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니, 비슷하지 않으면 첫눈에 반할지는 몰라도 살아가며 이해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지금도 아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면 쪽지에 적어 벽 등에 붙여 놓곤 한다.

최근 에라스뮈스의 <교육방법론>을 읽다가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떠올릴 수 있었다. 에라스뮈스는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간단하고 보기 좋은 차트로 만들어 다른 일을 하면서도 눈에 잘 띄는 벽면에 걸어두어라" 하고 조언하였다. 그는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을 창문과 벽, 심지어 컵에도 빼곡히 적으라고 하였으니, 에라스뮈스는 어릴 적에 암기 관련해서 편집증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나보다도 과한 면이 있었다. 난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지성인이라 불리는 이의 암기법이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서 이상한 위안을 받았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특별한 사람이 그렇다면 더 말할 게 없다. 물론 특별하다고 여겼던 사람도 실상 특별할 게 없다는 사실에 놀라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것이 특별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나는 우리 삶에서,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서 '특별한 것'을 찾는 행위가, 그런 기대가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난 그때 있었던 아내의 행동을 다시 조명해 보았다. 그때 아내는 내가 자신의 방에 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럼 혹시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다급히 방을 정리한 뒤 서둘러 의자에 앉아 <군주론>을 펴 든 게 아니었을까? 격언은 나의 방문에 맞춰 일부러 붙여놓은 것 아니었을까? 게다가 아내는 인문학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사람은 비슷한 것에 끌린다는 심리 법칙까지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면 아내는 작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베토벤의 음반을 쓰다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방은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무대였고 난 초대된 사실을 모르는 관객이었던 셈이다. 난 아내에게 이러한 해설을 곁들이며 혹시 내가 '걸려든 건지' 물었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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