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영욱

너는 침대 위로 올라가. 그곳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이지. 그 남자는 책을 읽고 있어. 너는 그걸 원치 않아. 그래도 책을 빼앗지는 않지. 남자가 싫어하는 걸 아니까. 대신 남자의 배에 올라타고는 허리를 세워 앉아. 여전히 남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책을 바라보고 있지. 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방법은 간단해. 방아를 찧듯이 남자의 배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면 돼. 그러면 남자는 잠깐 책에서 눈을 뗀 뒤 너를 바라봐. 그러지 말라며 차분한 목소리로 나무라는 남자와 너의 눈이 마주쳐. 그러면 너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지지. 꾸짖는 말에 애정 어린 온기가 담겨 있음을 너는 알고 있으니까. 남자가 보낸 관심이 엉덩방아 덕이라고 생각한 너는 깔깔대기까지 하며 더 열심히 엉덩방아를 찧어대기 시작해. 너의 움직임에 몸이 불편해진 남자는 몸을 옆으로 틀고, 자세가 불안정해진 너는 곧 옆으로 쓰러지지.


네 몸이 닿은 곳엔 여자가 있어. 그 여자는 아까부터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어. 너는 그 여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어쩌면 너의 예상은 틀렸을지도 몰라. 여자는 금세 잠이 드는 편이니까. 사실 상관은 없어. 넌 여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신경 쓰지 않으니까. 여자가 금세 잠이 드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너는 남을 신경 쓰지 않아도 질책을 받지 않는 축복을 누리고 있거든. 여자에게 다가가 쓰러지듯 몸을 던지는 너의 모습엔 그 축복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 여자는 네가 가한 급작스러운 충격에 입술을 실룩였지만 끝까지 눈을 뜨지는 않아. 눈을 뜨는 순간 여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버리니까. 하지만 넌 그걸 눈치채지 못하지. 너는 다소 토라진 듯 침대 구석으로 가 몸을 뻗어.


남자는 여전히 책을 보고 있고 여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어. 넌 어디선가 가져온 비닐을 손으로 움켜쥔 채 침대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지.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벌떡 일어나 앉고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해. 남자와 여자는 물론 너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남자가 책을 내려놓고는 너를 바라봐. 대체 뭐라고 하는 걸까.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바라본 여자의 입술엔 미소가 그려져 있어. 너는 여전히 알아듣지도, 또 기억하지도 못할 말에 열심이지. 남자는 책을 내려놓은 채 그런 널 계속 바라보고 있네. 어쩌면 그 모습을 기억해야 하는 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밤은 사람을 감상에 빠뜨리곤 하니까. 남자가 여자에게 무어라고 말한 뒤 침대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가. 너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지만 남자는 알지 못하지. 밤은 눈을 어둡게 만들곤 하니까.


남자가 떠난 방엔 여자 둘이 남아 있어. 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몸을 뉘어. 그러자 어디선가 커다란 팔과 손이 다가와 네 몸을 감싸 안아. 너는 그걸 알아, 온기로, 그 순간을, 따뜻한 그 품을. 너와 여자가 꿈을 꾸는 동안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어. 남자는 꿈을 기록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꿈에 대해선 도통 알지 못하지. 두 여자가 무슨 꿈을 꾸는지도 말이야. 남자는 신과 같지만 여자의 품속에서 나고 죽는 존재이니 이 남자도 예외가 아니거든.


내일도 침대 위로, 의자 위로 올라와 주지 않겠니?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을 남자에게로. 그 단 한 번의 포옹이 선사할ㅡ언젠간 잊어버릴, 언젠간 그리워할, 너마저 알지 못하는ㅡ네 꿈의 전이를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