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고 여행은 짧다
나의 한 달은 어땠나. 내가 여기서 기대하던 것들,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던 것들. 마음껏 했나?
그건 사실 한 달 동안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또, 불명확했다.
그저 나를 찾겠다며 도피처럼 떠나는 여행만은 아니길 바랐다.
이제는 제법 가는 길도 익숙하고, 고작 한 달 새에 외국인들을 마주하는 게 오히려 더 익숙해졌다.
가끔 거리에서 한국말이 들리거나 마주칠 때면 뭔가 모를 불편함까지 생겼다.
사실은 특별함을 느끼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커리어, 경제력, 외모, 부유한 삶, 행복에 대한 전시. 누가 주도하진 않았지만, 늘 그 경쟁 속에 살았던 것 같다. 베를린까지 날아와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보고, 낭만 가득한 집에 살면서, 일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지만 더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기에 어려웠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멋져야 하는 이곳에서 쿨하지 못하거나, 찌질한 건 용납할 수 없어!
눈치를 보지 않는 곳에 와서 자유로웠던 모든 것도 사실 나 자신에게는 계속 판단당했으니까.
낯선 여행지를 빌려서, 말랑말랑하던 시절의 나를 기억했고, 괴로움을 알게 된 고교시절을 기억했다.
방황하던 20대 초반과 쉼 없이 달려온 지금까지, 반갑지 않은 기억을 꺼내며 지금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되새겼다.
치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용기 내어 위로하고 사랑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난날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고. 하기 힘들었던 말을 글로 쓸 수 있다.
잘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가치에 더 집중하며 삶을 긍정하고 있다.
6년 전, 베를린 도시잡지를 읽고 처음 이 도시를 동경했고,
2년 전, 처음 독일에 와서 이곳에 살고 싶다고 운명처럼 생각한 날.
여행은 결국 한 순간으로 또 지나가고,
더는 첫 순간에만 유효했던 감정을 느낄 수 없었지만,
평소의 나처럼 열심히도 사는 것도 빼놓지 않고. 가고 싶은 곳, 입고 싶은 옷, 쉬고 싶은 날 나름대로 즐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사치스럽게 살았다.
나의 서른. 여행을 마친 뒤엔 변한 게 없이 난 다시 제자리로 가겠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의 날들에 점 하나라도 남긴다는 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는 내 안에서 평범했던 하루하루는 더 의미 있게, 힘들었던 기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낸 걸로, 좋았던 기억은 더 좋게 다듬어질 것이다.
지금보다 나중에 추억으로 떠올릴 그때가 더 기대가 된다.
“평생 여행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아.”
숙소를 떠나기 전 일기장에 적은 말.
어둡고 긴 터널에 서있던 나를 출구로 인도해 준 건 여행이었고 , 그 출구는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에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또 떠나겠지만 ,
과거의 나의 손을 잡고 지금의 나를 믿으면서 남은 삶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