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목소리부터 고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바꾸려 했던 내 몸의 모든 것들
아홉 번째: 신경 가소성 – 감각은 ‘감’이 아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소리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소리를 내고는 있는데, 그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고,
몸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진동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호흡을 조절하려고 해도, 중심을 세우려고 해도
“여기다”라고 지시한 근육은 따르지 않았다.
마치 나와 내 몸 사이에 얇은 막 하나가 끼어 있는 느낌.
예전의 나는, 그럴 때면 ‘내가 둔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만이 음악을 하는 거라고.
나는 몸치니까,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논문에서 이 문장을 보게 되었다.
“감각은 훈련할 수 있는 뇌의 능력이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감각은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바로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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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감각 자체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감각을 인식하는 뇌의 회로를 다시 짜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아주 단순한 훈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복식호흡을 하면서,
‘지금 공기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어디가 부풀고, 어디가 움츠러드는지’
그걸 그냥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고 느낀 걸 매일 한 줄씩 기록했다.
“오늘은 오른쪽 갈비뼈가 단단한 느낌이야.”
“오늘은 배 아래쪽이 잘 안 부풀어.”
처음엔 그냥 감각을 기록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걸 반복하면서 정말로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아무리 들이쉬어도 느낌이 없던 횡격막의 움직임이
몇 주 뒤엔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호흡의 압력도 훨씬 자연스럽게 조절되기 시작했다.
근육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그 근육을 ‘읽는 뇌’가 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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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읽는 감각’은 결국 신경 가소성의 결과다
우리는 흔히 신경가소성이라고 하면 기억이나 사고력을 떠올린다.
하지만 감각에도 신경가소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뇌과학 논문들이 말한다.
“감각은 감각 기관이 아니라, 뇌가 해석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건
그 감각 경로가 없거나, 약하거나,
혹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건 내가 노래를 통해 경험한 가장 확실한 ‘신체 훈련’ 중 하나다.
내가 느끼는 공명, 압력, 진동은 예전과 같지 않다.
같은 소리를 내도 이제는 훨씬 더 세밀하게 느껴지고,
그 감각을 바탕으로 소리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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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감’이 아니라 기술이다
나는 가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소리가 어디서 울리는 것 같아?”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불안정하다.
“글쎄요… 코인가요? 아니면 목?”
그건 틀려서가 아니다.
그 감각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각을 느끼는 것 못지않게,
느낀 것을 표현하는 훈련도 병행한다.
“코에서 진동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느낌”,
“복부 깊은 곳이 말없이 수축하는 느낌”,
이런 감각 언어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뇌의 인식 구조를 강화하는 반복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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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감각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배우는 방식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뇌가 주의하고, 통합하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전체 과정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한 발성을 갖지 못했다.
그렇기에 매일 조금씩, 느리고 조용한 훈련을 반복한다.
빠르지 않지만 깊게.
크지 않지만 섬세하게.
그것이 내가 몸을 바꾸지 않고도 소리를 바꿔온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감각을 조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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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신경가소성을 기반으로
내가 어떻게 ‘발성 감각 지도’를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배울 수 있는 ‘악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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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꾸려 했던 내 몸의 모든 것들〉 시리즈는
단순한 발성 훈련기가 아닌,
몸과 마음을 함께 회복해 온 저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