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껴 보는 시야에 해가 가려진 흰빛 하늘로 하늘빛 하늘과 노란빛과 보랏빛의 하늘이 보인다.
감각이 일을 할 때는 이미 생각도 없다. 감각으로 느끼는 그 순간에 경험으로 쌓인 기억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아도 멍 때릴 수가 있고 눈을 감아도 멍 때릴 수 없는 게 우리의 뇌 신경인 듯하다.
무의식의 생각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건지, 의식으로부터인지, 혹은 의식적으로 하는 생각도 경험된 인식의 부재로부터 올라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의 상념은 늘 오락가락하며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고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물밀듯이 올라온다. 그저 올라오는 생각들을 인지할 뿐이다.
'사나운 땅의 사람들'이라는 넷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미국 서부개척기에 원주민인 인디언을 내쫓으며 땅을 차지하던 시대의 극이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퐁퐁 솟아나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 생각들은 자연스러워서 좋다. 나의 신앙과 관련된 깨달음 같으면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깊이 곱씹게 된다.
몇 년 전, 하나님을 알기 시작 때부터 그런 생각을 줄곧 했었다. 의심과 궁금증이었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의 전쟁을 보고만 계실까?' 성경 설교를 듣다 보면 그는 무조건 인간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하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고 한다. 또는 죄를 너무 많이 져서 받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잔인하게 피를 부르기도 하시는 건 왜인데?'
뭔가 깊은 뜻이 있으시겠지. 믿음이 먼저인 거야. 믿다 보면 답을 알게 되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너무하신 거 아냐?' 늘 그랬다.
오늘 드라마를 보다가 의심이 풀렸다.
이 시대극 속에서는 화살이 빗발치고 총알이 날아가 피가 흥건하다. 그런 부분은 잔인해서 눈을 돌리지만, 내용은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1800년대 미국 서부가 저랬었구나 싶은...
늘 하나님께 왜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내 물음에 대한 답이 올라왔다.
순전한 하나님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저 잔인한 활극 속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왜 저런 곳에서도 저들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걸까? 나 같으면 죽음을 달라고 할 텐데...' 뜨아 이상했다. 저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찢어지고 잘리고 하면서도 피 묻은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 드넓은 사막과 황량하지만 넓은 땅, 그 지평선 끝에 넓고 탁 트인 파란 하늘이 있는데도 그 하늘을 보는 사람이 없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잔인한 무대와 잔인함 속에 살고 있는 험악한 사람들만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진정 인간이 살고자 하는 이유는 평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지 않을까!
하나님도 인간이 그리 살기를 원하실 테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주셨는데...
과연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사는 걸까?
피로 물들인 건 원초적으로 인간들 스스로였구나 싶었다.
성경 속 전쟁도 모두 인간의 끝없는 욕망 때문이었다. 서로가 내어주고 탐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살았으면 평안하지 않았을까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먹을 것, 누릴 것, 기뻐할 것, 즐거워할 것, 감탄할 것도 모두 주셨다.
숫제 인류가 번성하지 않았으면 그리 살았으려나...
가진 것이 없다는 건 부의 사재기와 누릴 것을 다 갖지 못하는 욕구에서 나온 말이다. 선사시대에는 나가면 자연이 주었다. 진정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류의 번창은 문명을 발달시켜 갔고 그 이기를 얻기 위해 다투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이 서로 뺏고 뺏기게 했고 죽고 죽이게 했다.
영이신 하나님이 모든 인간이 자녀인데 누구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의 탐욕에 무엇을 채워주실 수 있으실까.
현재 일어난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것, 나아가 자연의 재앙을 받는 것 등 모든 것이 인간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내면 어딘가에 있었던 '그래도 너무하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툭 떨어져 나간다. 가끔 하나님은 부지불식 중 이런 식으로 나의 궁금증에 응답하신다.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 침대에서 살다 보니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컨디션은 최상이다. 하늘을 보면 더 만족한다. 그런데 나의 욕심은 즐겁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심심한 마음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게 되고 욕구 충족을 위해 핸드폰을 사용하고 글도 쓴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외출해서 산과 바다를 찾고 하늘을 보며 산책하고 자연에서 꽃을 감상하고 과실과 자연 나물을 얻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자연인들은 넉넉하고 서로 악다구니치며 많이 갖겠노라 다투지 않는가 보다.
有求皆苦 無慾則强이 떠오른다.
구하는 마음은 괴로움의 원천이고 그 욕심이 없으면 살인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서도 강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땅덩어리, 잇권 더 챙기겠다고 싸우는 자들은 진정 강한 자일까? 나이가 먹어도 죽을 날을 생각지 않음인가?
이럴 때마다 늘 되돌아오는 물음... 왜 하나님은 인간을 이리 요상하게 만드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