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 근처 결혼식에 갔다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지금 시간 있는지를 물었다.
"나 점심은 여기서 뷔페로 먹었는데 커피는 너랑 마시고 싶어. 지금 시간 돼? 오늘 넌 나의 수다 대타야.ㅋㅋ "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했다.
친구란 이런 게 좋은 거지. 나이가 들면 1km 반경 내에 있으면서 콜 하면 눈곱 안 떼도 외투 하나 둘러치고 나와주는 친구가 최고라더만.
"이런 게 번팅이지. 불만 없지?"
"넘 좋아~ ㅇㅇ야. 나 이런 거 좋아~좋아."
가끔 나의 어투는 터프하다. 그러면 절친들은 오히려 팔짱을 끼며 좋아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난 애교도 없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여성스러운 살가운 맛은 떨어진다.
"나 뭐든 얻어먹을 때 절대 이러지 않는데 말이야... 헤헤. 너니까 호사를 부려보는 거야. 비싼 커피로 마셔도 돼?"
"당근 당근~~"
친구는 내 말에 커다란 당근을 건넨다.ㅋㅋ
"ㅇㅇ야, 이것 좀 읽어 봐. 여기부터 여기까지. 특히 ㅇㅇㅇ이란 분과 내가 쓴 부분을 객관적으로 잘 봐줘."
평소 그런 적이 없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친구가 고민거리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임톡에서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것을 오해해서인지 아님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 누군가 자신 때문에 모임을 탈퇴했다는 것이다. 말에서 무슨 실수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봐 달라는 거였다.
"톡의 내용에서 내가 혹시 잘못 말한 거 있어?"
"아니~."
"근데 요 ㅇㅇㅇ이 나 때문에 탈퇴하셨대."
톡의 내용을 보니 그 ㅇㅇㅇ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갔다.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말의 가면 속에 숨겨진 감정은 뭐란 말인가. 그것이 화근이다.
그분이 모임 회장께 하신 말이 친구의 귀에 들어온 것이다.
"난 고민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뭣 때문인지 모르겠어. 나 때문에 나갔다는데, 난 그냥 억울할 뿐이야. 나도 말씀드리고 나올까 봐."
"그러면 너를 믿고 아끼는 다른 회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 생각에는 네 마음의 상처를 말씀드리는 건 좋지만, 상한 기분에 탈퇴하는 일은 안 하면 좋겠네."
"씨~ 나 억울해. 분노가 올라와."
"어디~ 어디? 얼마큼? ㅎㅎ"
"여기 이만큼~. ㅋㅋㅋ"
친구도 내 장난에 응대로 익살스럽게 가슴을 받치는 포즈까지 해 보인다.
예전부터 괜히 씩씩거려 보는 모양새는 여전히 귀엽기만 하다.
"ㅇㅇ아, 가면을 써. 유야무야.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게. 가만 보니, 간혹 가면도 필요한 것 같아."
난 가면이라는 걸 생각지 않고 살았다. 가면을 무조건 부정했는데, 지금은 아름답고 선한 가면도 있음을 안다. 가면을 부정하지만 알게 모르게 나도 가면을 쓰고 살아왔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에서 본 유다의 마음처럼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온갖 부정의 생각들이 올라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보다 나은 게 뭔데? 나랑 거의 동년배잖아.' 하면서도 유다조차 표면으로는 예수에 대해 '예수님~ 예수님~'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대했다. 나는 이런 유다의 태도를 스승으로 모시는 분에 대한 예의의 가면이라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없이 속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표출되는 모습과는 다르게 나도 모르는 부정의 생각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딱 '내 마음 나도 몰라.'인 셈.
내 말에 의미심장의 눈짓을 하며 친구가 대꾸했다.
"맞아. 가면 필요해."
특유의 야무진 입매무새를 고치며 응당 그런 거지 하듯 잠깐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친구는 뭔가 자신이 취할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 같았다.
"야 ~~ 근데 가면 싫어. 에이 그냥 가면 말고 확 승질대로 해버리면 안 될까?"
말은 말일뿐. 이제는 친구의 말도 장난 같은 말뿐임을 안다.
"그래 그래 승질대로 해버려ㅎㅎ."
나의 대꾸도 말뿐이다.
예전부터 성질의 닮은 부분이 있는 건 안다.
친구니까~유유상종.
나도 그도 가면을 쓴다는 것에는 늘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우리는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면이 활개치고 있고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긍정의 가면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헤어져 오는 전철 내에서 생각했다.
우리는 몇 개의 세상을 살고 있는가.
본성으로 사는 현실의 세상.
쫌은 위선스러운 가면 속 세상.
뇌의 외도, 꿈속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크게 세 개로 분류
해 본다. 분별함이 일체의 우주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현실의 세상을 살고 있기에 현실의 나에 맞추어야 한다.
가면 속 세상은 선하건 악하건, 위선의 세상이다. 본성에는 반하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현실의 세상을 살아가는 스킬이라 해야 할까. 씁쓸한 계피맛처럼 그리 좋지는 않지만, 가끔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 써야 할 때는 기꺼이 써야 한다는 것.
꿈속 세상은 과거의 세상이고 뇌의 이중적 세상이다. 과거는 머물지 않고 형체도 남기지 않으니 꿈이다. 희미해져 가는 꿈. 뇌의 이중적 세상. 참 재미있지 않은가. 뇌의 외도. 현실의 단조로움을 깨고 더 으스스한, 더 환타스틱 한 세상을 즐긴다. 아무런 분별없이 선과 악조차 없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이 육체의 형상으로 여행하는 곳. 꿈속 세상.
너무나 생생한 이 커다란 현실의 세상에서 나는 본성으로 때론 가면을 쓰고, 그리고 꿈을 꾸며 살아간다. 하루 24시간을 서로서로 사이좋게 분배하며 살고 있다. 한 육체로 여러 세상을 사는 거 참 재미있지 않은가...... 당신은 24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