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항저우 여행에서 이미 선물로 진주 목걸이와 귀고리 세트를 받은 터였다. 선물은 이미 줬고 케잌도 사 준 언니, 그리고이미 선물도 받고, 케잌에 축하 메시지까지 다 받은 나.
무언가 모르는 감정에 나 자신도 의아했다.
케잌만 두고 갔다고 우는 게 맞나?
생일날 얼굴 안 봤다고?......
정말 그렇다면 더 웃긴 일이지 않을까.
나이가 어리면 어리다고 했겠지. 청춘이면, 센티해서 그렇다 치자......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얼마나 유치한 일인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최근 내게는 이상한 심적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왜 사람들과 이별할 때가 되면 슬픈 걸까.'
케잌은 이미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한참을 이유도 모른 채 울었다. 단지 느낄 수 있는 것은 현관문 열었을 때 이미 내려가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확 터졌다는 것뿐.
난 그날부터 생각에 집중했다.
'참으로 애들처럼 유치한 행위인데, 왜 눈물이 났을까......'
그리고 얼마를 지나고 기억해 냈다. 젊을 때부터도 늘 헤어짐 앞에서 슬퍼하며 가슴에 떨림이 있었던 것을. 때론 헤어지고 ㅡ연인도 아닌데ㅡ 주체 못 하게 울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온 정을 쏟았던 것이 기억났다. 연말이면 늘 보내는 아이들 앞에서 나 혼자 울었다.
난 내 우울의 시작점에 섰다. 시작점은 초감정.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갑자기 몰아친 심적 변화 그리고 번아웃. 우울증을 치료하고 홀로 깊어진 묵상의 시간들을 보냈다. 3년쯤 지나니 저절로 노트북에 손이 갔다.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다. 쓰다 보니 슬픔이고 외로움이며 그리움뿐이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무언의 강박. 그리고 써야 하는 이유를 찾으며 더듬거렸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아리송하기만 했고 전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왜 우울증을 앓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다는 '왜'가 중요했다.
이유는 과거로부터 묵어온 초감정 때문이었다.
현재의 감정을 일으킨 근원적 감정. 그 초감정의 사연을 들여다보고 다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우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다.
우울에서 벗어나고도 한 2년 멍한 상태로 지냈다. 1년은 우울의 잔재를 없앨 완전한 치유의 방법을 생각했다. 두서없이 노트북에 썼던 내용들을 차분히 정리해야 했다. 2023년 12월부터 내면에 숨어있던 초감정의 사연을 꺼내어 글로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차분하게. 그리고 정연하게.
글 쓰는 과정에서 우울을 앓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고 여러 차례 오열했다. 글을 지금 쓰는 게 옳은지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인 내가 할 일은 단절된 내 어린 날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일이었다. 지금을 살기 위해 과거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