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살펴보니 거실 바닥 귀퉁이에 때가 보인다. 햇빛이 잘 드는 남서향 집이라 가을이 깊어갈수록 긴 빛줄기에 드러나는 때들이다. 이도 관심에 이끌린 시선으로 포착된 것이다.
나는 할머니는 아직 안 됐지만, 여느 노인처럼 꽁무니는 바닥에 깐 채로 썰매 타듯 움직이며 매직스펀지ㅡ예전 우리네 할머니 세대에 이런 게 있었으면 무지 좋아라 매일 닦으셨을 것이다.ㅡ로 빛에 드러나는 때를 닦아본다.
사람도 집도, 물건도 옷도 눈길을 받아야 빛을 내는 법이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에도, 저녁마다 집에 있었고 주말과 주일에 집에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집안은 빛이 나지 않았다. 때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따듯한 느낌, 포근한 쉼터의 느낌, 뭔가 집안 가재들도 내게 속삭이는 듯한 그런 느낌이 ㅡ지금은 있지만ㅡ 그때는 없었다.
평소 친숙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자신들을 보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듯하고, 시시때때로 칭얼대기도 하는 그런 다정한 느낌. 그야말로 살아서 소통하는 듯한 느낌이다.
집안 가재, 집기들이 전에는 시큰둥한 동거자 내지는 동거물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방에서만 머무르는 가족의 모습처럼 썰렁한......
지금 때 좀 닦아달라는 칭얼거림을 들어주었다. 환한 얼굴로 좋아라 한다. 내게도 기쁨이다.
집도 관심의 눈길을 받고 손길이 닿을 때 그리 빛이 난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처럼.
둘...
침대 방에 옷 수납통이 세 개가 있다. 아들의 옷이다. 하나의 통에는 청바지 외 바지만 들었다.
엊그제 청바지와 검은 바지가 무ㅇㅇ에서 날아왔다. 가을 맨투맨 티도 날아왔다. 에미의 촉엔 수납통의 바지가 떠오른다. 쩝~
보관 통 하나에는 가을 니트와 남방과 티가 들어있다. 켭켭이 쌓아둔 터라 눌려 주름져 있으니 젊은 아들 눈에는성이 안 차리라.
내 눈으로 보니, 툭툭 털어 손질하면 입을 만 한데, 그도 아들 눈에 신삥의 맛은 없을 터이니 슬쩍 외면당할 것이 뻔~하다.
귀퉁이 때를 닦으며 눈 뜬 아들 들으라고 중얼거렸다.
"에고, 집안도 관심 주고 자꾸 손길을 줘야 빛이 나네."
"아들, 집도 그렇듯 사람도 옷도 그런 것 같아......" 딱 요기까지 만이다. 더 나가면 잔소리만 될 터이니 말 줄이자.
취업 못하고 제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수염도 머리도 옷도 신경 쓰지 않고 방도 신경 쓰지 않아 서로서로ㅡ사람과 물건 옷 등ㅡ 눈살 찌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때. 그때의 공기는 탁했다. 아들 인간의 공기도 방의 공기도......
취업하여 들락날락하고,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밀폐되어 썩어가려던 공기는 새 공기로 순환을 맞았다. 늘 답답했던 방공기가 리프레시되었다.
아들도 빛이 나고 방도 썩 봐줄 만하다.
옷도 그럴 것이다. 자꾸 애용해 줘야 보풀조차 살아나고 보온성도 살아나고 제 스타일도 살려낼 것이다.
그래도 직설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청바지도 에미는 끽해야 3~4개 정도인데, 아들은 10개가 넘을 듯하다. 사놓고 태그를 떼지 않은 바지도 있다. 사이즈별로도 다양하다. 아들의 체중이 고무줄같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점은 인정하나 바지가 넘 많은 것 아닌가. 우리 집은 옷방도 없을 뿐 아니라, 오래된 구조라 ㅡ안목 치수로 짓거나 확장 옵션형이 아니다.ㅡ 협소하다.
아들에게 살며시 고했다. 명령인가... ㅎ
"입을 수 있는 것과 안 입을 것을 분류해 놓아라. 옷도 자꾸 입어줘야 빛이 나니 묵히지는 말아야지 싶다. "
잔소리로 듣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서 땡.
셋...
집과 집기들, 옷, 아들도 곁에서 나와 연결된 상태, 관심받고 주는 손길 안에서 빛이 나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 편안한 느낌이다.
이제 단절되어 차가운 느낌이 없다.
인간관계를 생각해 본다. 다른 어느 것이 인간에게서 뿜는 빛을 이길쏘냐. 세상과 인생을 넓은 우주로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현재의 좁은 세계에서 때로 느끼는 단절이 있다.
그것은 내 손길을 떠난 빛이다. 큰 아들이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모습. 참~~ 정이 깊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빛의 단절을 느낀다.
산고의 출산은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임을 잊지 말라는 이유란다. 산고를 기억하며 부모의 사명을 다하라는 엄중한 명령.
이제 그 한 생명은 다 자라서 나와 32년의 진한 인연에서 떨어져 독립했다. 내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는 사명을 다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와 자식으로의 인연은 30~40년 전후로 끝이 나나 보다.
뭔가 서운한 느낌이 젖어 들어 막내에게 말했다.
"아들, 산고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기억하고 잘 길러 내라는 이유로 주신 거라네."
"그런가. 산고를 잊지 말고 잔소리로 잘 키우라는... '내가 말이지. 니들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이야.' 하면서 ㅋㅋ "
" 엥~ 엄마가 언제 그런 말 한 적 있냐?"
씩씩거리는 척하니,
"아니 엄마께 하는 말 아니고 일반 다른 엄마들 얘기지.~ 울 엄만 안 그러지. ㅎㅎ"
.......
"이제 형도 독립했으니 곧 울 ㅇㅇ이도 독립하겠지."
나는 큰 아들을 독립시켰다. 아들의 독립만큼 나도 아들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제는 과제처럼 다가온다. 곁에 있어 빛내 준 아들. 그도 나의 관심과 손길 영역 안에 있을 때였다. 이제
아들로서 보다 한 가장으로서, 인격체로 분리시켜 보아야 한다.
늘 생일이면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이번부터는 그도 함께 하지 못한다. 좀은 서운하나 순리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싶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가져간다면 불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인연은 인연이되 객관화할 인연이다.
사진은 시간을 저장해 주는 좋은 기억체이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훤칠한 청년이 내 아들이었다. 그뿐. 아들은 사진 속에서 빛의 단절을 고하는 듯하다.
나에게는 그러하나...
아들은 새 자리에서 또 다른 관심과 손길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한 시간 전 빨래 널 때 그리 좋던 빛이 구름 뒤로 숨어 탁해졌다.
순간의 마음도 그렇고 일생에서의 빛도 그러하다. 몇십 년 옆에서 빛으로 있어준 인연도 그러하다. 주변의 모든 것들도 인연이 다되면 그러할 것이다.
관심과 손길을 받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은 빛난다. 곁에 있는 세상에서 당신도 빛나는 존재로 영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