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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Aug 16. 2017

WANTED 재벌 2세 서자를 찾습니다

로비로 모이세요들.

written by 집순이


데니즐리는 큰 도시다. 꽤 컸던 페티예의 휴양지 분위기는 전혀 없는 일반적인 대도시. 몇 블럭만 걸어가면 모스크가 나타나고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데 대부분이 주상복합 건물이다. 상상도 못 했다, 1층에서 옷 팔고 음식 팔고 2,3층에서 예배드리는 모스크의 풍경은.


주상복합 e편한 모스크(비하 아닙니다)


특정 시간이 되면 모스크에서 기도소리 같기도 찬양소리 같기도 한 녹음 파일을 확성기로 틀어준다. 그 소리에 맞춰 기도하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못 봤다. 터키 이슬람교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교와 비교할 때 사짜에 가깝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알바니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휴게소에서 마주쳤던 무리들-모자와 옷을 똑같이 갖춰입고 한 방향을 향해 동시에 절하던 남자 대여섯명-을 제외하면 여행하며 이슬람교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터키인들에게도 종교란 그리스인들의 그리스정교회처럼 생활 양식에 가까운 것일까? 이슬람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늘 궁금하고 두려운 영역.


바로 전에 묵었던 도시 셀축(에베소 근처) 호스텔에서 흥미로운 여행자를 만났다. 대기업 해외법인에서 일하다가 사장까지 올라가셨다는 일본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둔(부모님들은 아마 이혼하신 것 같았고) 84년생 한국인 남자. 이제까지 한국인 여행자들과 길게 대화 나눌 일이 없었는데 이분과는 저녁도 같이 먹으러 나가고 동네 산책도 같이 하고 조금 특이 케이스였다.

교포스러운 말투 때문에 한국에 안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여의도에서 자산운용사 혹은 펀드매니저 비슷한 일을 했고 지금도 여행 다니는 와중에 틈틈이 그 일로 여행비를 벌고 있었다. 우리에겐 회사명을 밝힐 수 없다며 주식 그래프가 왔다갔다하는 자신의 노트북 화면조차 노출을 꺼렸다. 창연 말로는 상위 몇 프로 사람들을 상대하는 회사에 다녔던 것 같단다. 산사람처럼 군데군데 검게 그을은 얼굴과 호기심이라곤 없어보이는 무기력한 눈빛, 땀에 절은 옷차림만 봐선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아,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 할 수 없지.


탁구장이 됐다가 수다방이 됐다가 인터넷 까페로 변하던 셀축 anz 호스텔 로비


중국 외국인 학교 다닐 때의 얘기도 흥미롭고(갑부 중국인 애들과의 싸움, 서양 애들과 친구 먹고 중국인 외모를 비하하고 그들의 포르쉐 창문을 깨고 도망갔다는 얘기("그땐 저도 어렸어요"), 거지같았다는 자신의 패션, 그렇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 마인드), 하나도 친하지 않다면서 계속 대화에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파리에서 놀다가 사귄 에펠탑 직원의 그녀, 여친과 한국에 갔을 때 이런 곳 정도는 가줘야 할 것 같아 데리고 갔다는 최현석 쉐프 레스토랑과 남산 타워 레스토랑에서 파리지앵 그녀가 고작 이런 음식에 이렇게 비싼 돈을 줘야되냐며 부담스러워했다는 얘기, 그녀와 자신이 즐겨 찾아갔다는 한국의 보통 음식점, 자신은 무슨 일을 하든 5년 단위로 지겨워하기 때문에 합정역 바로 앞에 열었다가 대박났던 게스트 하우스를 5년만에 접었다는 사연, 그 얘기로 시작된 해외 한인 민박들의 불법 운영 얘기, 파리에서 합법으로 민박 운영하고 싶어 대사관 직원과 씨름했다는 얘기, 지금은 한국과 해외를 번갈아가며 살고 있지만 결국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해 갈 듯 말 듯한 얘기까지. 아, 아버지가 사 준 집을 월세로 내놓고 그 돈으로 여행다니고 있다는 얘기도. 모든 게 흥미로웠다.

나는 생각도 못 해 본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걸어온 인생 노선이 아예 다른 경우도 있지만(국적이든 부모의 경제력이든 뭐든) 타고난 성향의 다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주식을 처음 배울 때 몇 초 단위로 몇 천만원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게 "재미었다"고 했다. 재밌다라.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운 좋은 케이스라는 사실을 잘 안다고 했다. 돈이 많기 때문에 주식이 재밌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건 성향과도 관련있어 보인다. 그는 모험, 짜릿함을 즐긴다는 거니까.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지인도 떠올랐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중 '이 돈이 사라져도 괜찮다, 혹은 이 돈이 사라져도 다른 길로 돈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그는 한 몇 년 반짝 게스트 하우스로 돈 벌고 숙박법이 바뀌니까(건물주가 아니고선 돈 벌기 힘들게 바꼈지) 바로 사업을 접었다. 어차피 여의도에서 일하면서 투잡으로 운영한 거였다. 호스텔 운영 경험 있던 동업자도 있었고.

사업은 전부를 걸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투잡 개념으로 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한데. 세상엔 돈과 사업의 이치에 밝은 이런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우리가 체크아웃 할 때 그는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에 열리는 한국 주식시장 때문에 새벽내내 일하다가 잠들어서 인사도 못 하고 나왔다. sns도 안 하는 것 같던데.

그를 만나고 나서 아주 소박한 바람이 하나 생겼다. 대기업 2인자의 숨겨진 둘째 부인이 낳은 서자를 어느 허름한 호스텔 로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나 중학생때 임시 국어 선생님 첫사랑이 딱 이런 사연 남자였는데. 둘이 만난 건 한국의 정신병원이었고.(스토리 죽이지)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꽤 궁금한데 우린 서로의 인생에서 다시 마주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 사람이야 잘 살 것 같애. 내 인생이야말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 죽겠다.


가끔 생각한다. 미래. 창연아 울어도 괜찮아, 산타는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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