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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Aug 27. 2017

지난 일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러시아 ·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 신앙 이야기

written by 집순이



*아래 글은 2017년 6월 17일 9:37am에 모스크바를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썼던 일기를 옮긴 것. 아ㅡ주 두서 없고 아ㅡ주 심각한 글과 약간 웃긴 사진이 나온다.




어디에나 슬프고 고결한 노동이 있다.

러시아에서 특별히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건지, 내 심리 상태가 그런 건지. 노동은 징벌과 같은 것. 편하고 좋을 수만은 없는 것. 알면서도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 9:40am, 지금 이 시각 자기 머리 두께만한 커다란 통나무를 팔에 안고 공사장을 걷는 노파를 보며 슬퍼진다.

러시아를 여행하며ㅡ특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며ㅡ공유개념과 하나님, 하나님을 각자의 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해 끝없이 생각한다. 세 번째가 가장 크고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탓이 크다. 이랑 노래도 약간의 몫을 더하고.

신이 앉아 있다
신은 행복하다
신은 만든다 신을
그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어서
이제 두 신이 앉아 있다
두 신은 행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끔 날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두 신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거기엔 행복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는 행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게 하고 있다
지겹게 먹고 싸고 본다
저주받은 것처럼 늙어간다
그러다가 가끔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분명히 뭔가 있었다

저의 존재는 무겁고 힘든데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요
한 사람을 감명시키기도 어렵고요
다시는 못 볼 사람들과 인사하고요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그걸 말하거나 노래하는 건 더 힘들어지고요

그런데
나는 왜 다 알아요?

-이랑, <나는 왜 다 알아요>



러시아 사람들은 어째서 2층 저렴한 침대값을 지불하거나 건너편의 좋지 않은 침대값을 지불해놓고 자신의 물건은 우리 1층 침대옆에 두는 걸까. 또 1층 창가 테이블은 우리와 2층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이 칸의 6명 모두를 위한 것인가. 어떤 이들은 내 바람막이를 건 곳에 자신의 식재료가 든 봉투, 아들의 가방을 말도 없이 포개어 걸어둔다. 2층 침대 옆에도 내 것과 똑같은 옷걸이가 달려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내 것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래도 되니까. 그게 편하니까. 내가 막 이해를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문제까진 아니고 그 사람들도 우리 테이블 위의 생수를 마시겠다는 그런 문제도 아니니까.

한국에서 난 이런 문제들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뻔뻔함이 지겨웠다. 나의 것을 침투하는 사람들을 용납은 해도 이해까진 영영 못 하겠던 나의 꼬레아 라이프.


기차 생활 덕분에 비교적 꾸준히 QT와 성경을 묵상한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는 중이라서 그런지 전에는 생각하지 못 했던 방향으로 흐를 때가 많다. 다양한 이미지들도 떠오른다.

모든 인류는 다 개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인류의 수만큼 다양한 경험들을 한다. 우리의 지식 수준, 인격적인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의 차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끊임없는 변수들이 존재하겠지.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동의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같을까? 우린 죽기 전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삶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아가고 경험할 수 있는 걸까? 이런 뻘소리는 괜히 기록해두는 걸까?


응, 이거 다 하나마나한 뻘소리.(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카톨릭은 기적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카톨릭의 본질일까 생각했다. 개신교를 검색하면 패권 다툼, 교회의 크기 확장, 지역 봉사 얘기밖에 안 나와. 그게 개신교의 본질은 아닌데.

카톨릭 역시 뉴스 검색으로 알게 된 내용이나 몇몇 지인에게 들은 얘기,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기적의 성당, 성상 얘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가 기적이 아니라 사랑만을 강조한 것처럼. 기적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소망, 사랑과 세상을 향한 소망과 사랑을 가르치다 죽은 것처럼.

이 책은 그런 점이 좋다. 하나님에 대해, 또는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이 과연 따를 만한 것인가 고민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과는 차별되는 나만의 개인적인 신앙 스토리, 하나님을 경험해나가는 과정의 중요함과 독창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오,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발 앞의 지옥을 보면서도 건너뛰지 못 하고 풍덩 빠져들어야만 하는 어리석음!

도스토옙스키는 자기 삶을 아주 극단적으로 정직하게 대면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책 속에 풀어놨다. 그들은 "나는 그안에 빠져야만 하는 인간이니까!" 소리지른다. 그런 소설속 인간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매력적인지 다들 알잖아. 크리스챤들이, 특히 소설의 재미를 아는 크리스챤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열린책들 세계전집 e북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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