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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Aug 22. 2017

EP9.여행 중에 읽은 책1-삼국지

이제 알은체를 시작하도록 하지

Written by 지랄방구


나 빼고 다른 사람들 다 읽었을 것 같은 책. 어디서 줏어 들어서 대충 스토리는 알지만 엔딩을 말하라면 주저하게 되는 책. 누가 글을 쓰거나 이야기할때 예시로 들면 괜히 있어보이는 책. 삼국지는 나에게 그런책이다.


이렇게 긴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밤새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읽었다는데 나에게는 어릴때 읽다가 번번히 실패하는 책의 대명사였다. 특유의 어려운 한문과 번역체 때문이었을거라는 첫번째 핑계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게임과 만화로 충분히 알은체 할수 있다라는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에게 책이란 정보를 얻거나 감성을 채우는 수단이라기 보다는 '얼른 읽어버려서 딴 사람한테 자랑질 하는 도구'인데 10권이나 되는 분량은 도무지 노력대비 잘난척 효율이 맞지 않는다. 실제로 2권이 넘어가는 책들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글이든 말이든 얼른 나 다 읽었다고 어디다가 자랑질해야 하는데 근질근질하다.

10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다니기 너무 무거워.jyp

다행히(?) 우리 여행의 첫 코스가 160시간짜리 시베리아 횡단열차였기에 그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뗄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광할한 들판들을 바라보며 단기필마로 적군을 섬멸하는 조자룡을 상상했다 는건 오바입니다.이건 정말 해본 사람만 말할 수 있는 경험인데 누구나 160시간 정도 열차에 있으면 안 그러던 사람도 책을 들게 된다. 기왕 오랫동안 지긋이 책을 읽을거라면 평소에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책들에 도전하는 것이 좋겠지. 아내도 평생의 숙원인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열차에서 완독했다.


이거 알면 아재

자 그럼 잘난체를 시작해볼까. 혹시 유비가 죽을 때 제갈량에게 했던 유언에 대해 아시는지? 유비는 위나라 조비를 공략하는 도중 병에 걸려 죽는데 죽기 직전에 제갈량에게 여러가지 부탁을 남기며 죽었고 핵심은 이거다. '내 아들 유선을 잘 부탁해 걔가 어려서 뭐 할줄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어. 니가 똑똑하니까 옆에서 잘 도와주고 여차하면 니가 왕을 해' 이러고 죽었다.


여차하면 니가 왕을 해. 이것이 핵심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비의 리더십은 최악이었다. 그는 의를 추구하지만 방법론에서 단한번도 효율적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제갈량의 뛰어난 지략을 칭송하는 척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제갈량의 조언을 철저히 무시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형주를 다스리시라고 그렇게 옆에서 꼬드겼는데 유비는 의리를 중시하며 거절한다. 또 촉한의 황제가 되셔야 한다는 제갈량의 조언에 거절거절하다가 겨우겨우 이를 수락한다. 제갈량이 옆에 없었다면 유비나 원술이나 원소나 다 거기서 거기였겠지. 심지어 유비는 감정적 리더십의 대명사다. 그가 왜 죽었는가? 관우를 죽인 위를 정벌하겠다고 앞뒤 안가리고 뛰어들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한나라의 정통성 계승 이라는 정의를 숭상하는 시대적 상황이 있긴 했지만 내가 읽는 유비는 '명분만 앞세우는 무능력한 리더십의 전형'이다. 유비같은 리더가 있는 있는 자들이면 어서 그를 폐위시키시라. 아님 빨리 빠져나오시든지.


그런 그가 거의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앞서 말한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이다. 본인은 한왕조의 몰락을 저지하기 위해 평생을 투신했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는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어떤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지식인(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철인에의한 통치)에 의한 통치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우린 철인통치 또한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 말에 국가의 통치를 단순한 혈통의 계승이 아닌 능력 위주의 군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유비가 깨달았다는 점흥미로운 것이다. 군주체제의 고대사회에서 보여준 실낯같은 민주주의의 싹이랄까. 군주로서의 유비는 답답하고 무능력하고 감정적이었지만 가끔보면 범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 나가는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삼국의 통일은 위나라 사마염의 차지였다. 그 똑똑한 제갈량도 유비의 유언에 따라 황제에 올지 못했다. 그렇게 똑똑했던 제갈량이 유선 체제에서는 한나라의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닿지 못했던 것일까. 이것이 결국 제갈량의 한계로 보여진다. 정치든 전쟁이든 그는 늘 적보다 앞서서 먼저 예상하고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나라 정통성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유선을 폐위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촉나라는 환관의 이간책으로 인해 무능한 유선이 전쟁을 대비하지 못해 멸망했다. 삼국의 통일은 무능력한 조조의 자손들을 역모를 꽤해 폐위시킨 사마염이 이뤄냈다. 사마의나 제갈량이나 지적으로는 둘다 뛰어났지만 미션의 성취는 지력보다는 개인의 욕망이 좌지우지 한 것이다. 유비의 사상은 시대를 앞서나갔고 제갈량의 지모는 타의 추종은 불허하였지만 사마가문의 욕망이 결국 통일삼국시대를 연 것이다.


이런 면만 보더라도 삼국지는 엄청난 컨텐츠다. 예전에는 유비, 촉나라 중심으로 삼국지를 해석했다면 현대에는 더욱 다양한 시각과 해석으로 삼국지를 즐긴다. 소설, 만화, 컴퓨터 게임, 삼국지 고스톱도 있던데 쫌만 더 있으면 VR로 장판파전투 체험도 가능할듯. 근데 삼국지무용론, 삼국지해악론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한 두번 정도는 삼국지를 읽는 것도 좋겠다. 맹신하는 삼슬람들이 문제지. 암튼 오늘의 아는척 하나 끝. 이스탄불에 오던 비가 그치는구나.


플스에는 위닝만 있는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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