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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Nov 20. 2017

EP16. 어쩌면 시리즈가 될지도 모를 스페인 여행기1

재미없는 스페인 역사 종교 얘기

WRITTEN BY 지랄방구


스페인을 떠나기 하루 전 스페인 전체를 아우르는 여행기를 남기고 싶었지만 쓰다보니 한 주제로 침몰하는 지엽적이고 지루한 주제의 글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여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주제들로 스페인여행기를 남기렵니다. 하여 짤막한 주제의 글들이 시리즈 형태로 남겨질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쓰여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스페인. 남부유럽. 우리 여행의 15번째 나라. 터키-이집트-모로코 삼연속의 무슬림 국가를 지나 다시 밟게 된 유럽 국가다. 무슬림 국가에서 (우리 말로) 돼지고기! 돼지고기! 돼지고기! 3창을 외치다가 유럽에서 가장 돼지고기가 맛있다는 스페인에 오게 되었다. 마드리드에 오자마자 중국식당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먹었고 삼겹살을 굽고 김치찌개에 돼지를, 카레에 돼지를 넣었다. 매일매일 그렇게 황홀한 돼지고기 먹방을 찍었는데 사실 스페인은 유럽 국가들 중에 이슬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다. 실제로 스페인의 역사를 보면 꽤 긴 시간동안 이슬람의 통치아래 있었고 심지어 최근에 발발한 바르셀로나 테러 이후에 IS는 미디어를 통해 "스페인에 알라의 왕국을 회복하겠다"라고 선포했다. 이슬람의 통치가 스페인에 남긴 것은 단순한 점령 그 이상의 영향력이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성당에 갈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유럽에서 성당을 보는 것이 뭐 그리 특이할 것이 있겠냐만은 스페인 성당에는 특이점이 있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의 성당은 '이슬람이 통치하던 시절'에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 포인트였다. 가령 세비야대성당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3위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세비야대성당 자리에는 원래 이슬람 사원이있었다. 이슬람이 세비야를 통치하던 시절에 어마어마하게 큰 사원을 지었는데 그 후에 다시 카톨릭이 통치하면서 그 사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대성당을 건축했다. 그런데 이슬람 사원을 다 허물다가 탑 하나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아름다웠나 보다. 스페인 카톨릭에서는 고민 끝에 그 탑을 보존하고 대신 꼭대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반 구 형태를 허물고 기독교의 상징을 넣기로 한다. 세비야의 유명한 건축물 '히랄다탑'에 관한 이야기다.

멀리 보이는 히랄다탑과 세비야대성당 입구에 기독교상징. 동일한 상징이 탑 꼭대기에도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의 장으로서 스페인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가 그라나다에서 만난 알함브라 궁전에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숨어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일종의 궁궐지구같이 넓은 지역에 여러 궁궐과 관련 유적지들이 있는 곳인데 그 안에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알함브라 궁전도 원래는 이슬람에서 먼저 건축을 했지만 이슬람 통치가 끝난 뒤 기독교 왕조에서 몇 개의 건물을 추가로 건축했다. 그라나다를 통치했던 왕조가 세비야를 통치했던 권력들보다 관대했던 것인지 그라나다는 기존의 건물을 허물기 보다는 그 곳에 자기네들의 건물을 추가하면서 후대의 사람들이 알함브라를 더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종교가 차지하는 위상이 은근히 높았던 것 같다. 이탈리아는 바티칸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고 독일의 개신교, 영국의 성공회에 대해서는 그래도 어렴풋이 들은바가 있었으나 스페인의 종교문제는 이 곳에 와서 여행을 위해 공부하면서 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여러 모습



스페인의 종교 관련해서 재밌게 알게된 것 또 한가지가 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은 지금은 그렇게 잘 나가는 국가가 아닐까?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제국주의국가가 현대에 와서도 몰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다. 한 때 그 어떤 나라보다도 부강했고, 제국주의에 앞장섰던 두 나라는 제국주의가 무너진 이후에도 그 기세가 막강하다. 반면 스페인은 뭔가 시들해졌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를 식민지로 뒀던 스페인인데 왜 지금은 유럽에서 실업률 높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나? 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하며 읽었던 '돈 키호테' 해설에서 한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거대한 양의 금과 은을 수탈해 본국으로 보낸 스페인이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이 바로 성당이다. 그들은 수탈한 자본을 토대로 산업을 육성하거나 교육에 투자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당을 삐까뻔쩍하게 꾸밀까만을 고민했다." 이 말을 들으니 성당이나 유적지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일리있는 해석이다. 스페인은 너무 종교성에 심취해 나라를 말아먹은 대표적인 나라다. 스페인 내전이나 20세기 유럽의 혼란스러운 정치 요인도 이 나라를 좀먹었겠지만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세비 대성당을 보니 화려한 이면속에 제자리 걸음 아니 후퇴만을 거듭했던 과거의 어리석은 스페인이 상상된다.


종교성 안에 감춰진 인간의 무지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그네들의 사당에 가진 모든 정성과 힘을 쏟는다. 경주의 석굴암이나 불국사, 터키의 블루모스크, 유럽의 수 많은 거대한 성당들 과 그 안에 가득한 금 장식들 그리고 한국의 화려한 대형교회들. 불경 어디에 사찰을 크게 지어 부처님께 마음을 표현하라고 써 있으며, 코란 어디에 모스크의 크기에 대한 언급이 있을까? 성경에서 심지어 예수님은 '돌 하나 위에 돌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카톨릭의 가장 큰 자랑이 전세계에 세워진 성당들이라면 그들이 읽는 성경은 내가 읽는 그것과 많이 다른 것일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하실까? 종교의 가르침들은 저마다 다른데 어리석은 행동들은 다들 비슷한 것을 보니 인간의 헛발질은 종교를 뛰어넘어 본성에 속하는 것 같다. 유럽을 다니며 정말 멋있는 성당들을 많이 구경했는데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했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우디의 파밀리아 사그라다가 건축의 미적인 의미에서 경탄스러울만하나 가우디가 '성당 건축을 통해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던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인상을 팍 쓰게됐다. 뭐라고? 성당건축을 통한 신앙고백이라고? 하나님이 과연 가우디를 기뻐하실까. 아니 가우디는 죄가 없고 카톨릭의 문제였을까.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내부에 장식된주기도문


생각해보니 여행을 하며 가장 좋았던 종교관련 유적지는 터키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가 아니었나 싶다. 지하 7층짜리 기독교 공동체. 아랍인들의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숨을 곳을 찾다 찾다 지하동굴에 숨었다. 데린쿠유는 성당 특유의 아름다움이나 경건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음침하고 침울하다. 그러나 그 안에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나는 신앙의 정수가 숨어 있다. 데린쿠유에서 가장 인상적인 물건은 돌문이었다. 좁은 계단 통로들이 계속 이어지다 넓은 지하로 내려가면 중간중간 동그란 돌문들이 있다. 혹시라도 발각되었을 때 지하로 피신하고 돌문을 굴려 박해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 문을 보고 있으면 당시 성도들의 치열함과 신앙에 대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전혀 편리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게 꾸며져 있는 공간. 그러나 그 안에 그 어떤 종교적 행위들도 흉내낼 수 없는 거룩함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 지키고자 했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아랍인들에게 항복하고 배교하면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불편함과 불안함을 선택한 사람들. 그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 그 공간이 참 좋았다. 투박하지만 진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남긴 유산.

가장 투박해서 가장 아름디웠던 데린쿠유

페인여행기가 어쩌다 종교한탄글이 됐나. 여행을 나왔음에도 명성교회 세습 뉴스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스페인의 종교역사와 뭔가 오버랩이 되는건 과한 적용일까. "기독교는 로마에 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에 가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에 가서 기업이 되었으며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대성당을 다니며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100년쯤 지나면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 건물을 구경하면서 이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었다고 말하면 어떡하냐?" 으으으 생각만 해도 꼴도보기 싫다. 그 꼴 보기 전에 빨리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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