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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Jul 16. 2017

혼자 하는 세계일주

잠깐 혼자있게 된 시간에 재빨리 상상한 세계여행기

Written by 집순이


창연이 화장실에 가고 없는 지금, 문득 이 여행이 혼자 하는 여행 같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느리고 여백 많은 여행을 했겠지. 창연이 조금 더 많은 곳, 조금 더 꽉찬 스케쥴을 바라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혼자였다면 나는 창연과 경험한 것들의 대부분을 아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아주 적은 곳에 아주 오래 머물며 아주 심심한 하루를 보내면서 오, 무료해, 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 심심해, 오, 나는 창동에서 느끼던 걸 고스란히 외국으로 갖고 나온 것밖에 없구나, 오, 그런데 바로 이거야! 했을 것 같다.

나는 무거운 엉덩이와 고독에 다를 바 없는 심심함을 온몸으로 느낄 때에야 비로소 이 시간이 나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여행 오기 전에 창연이가 "한 번 정도는 일주일동안 떨어져서 각자 여행 해보지 않을래" 얘기했었는데 그땐 그 말이 좀 섭섭하더니 지금은 그 여행이 어떤 여행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상상하지 않아도 난 알 수 있지만. 

어디 볕 좋은 데 앉아서 책 읽고 음악 듣다가 그림자 길어질 때쯤 관광 맵에 표시되지 않은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면서 나 아닌 모든 것에 촉각을 뻗겠지. 이 동네 월세는 얼마나 되려나 추측하면서. 함부로 대하고 싶은 이방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에 힘 뻣뻣하게 주고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거 아니까 사람 없는 골목길은 포기해버릴 것이다. 창연이랑 여행할 때완 다르게. 

창연은 내가 없으면 어떤 여행을 할까 궁금하다. 막 상상하려는데 얘가 화장실에서 돌아왔네. 혼자 떠난 세계일주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시 둘이 되었다.


혼자 왔으면 이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으려나. 사진좀찍어주세요! 부탁한 뒤 샌들 던지고 벤치 앉긴 힘들지.



+

만약 진짜로 나 혼자 세계일주 가고 싶다고 작년 이맘때쯤의 창연에게 말했었다면 엄청나게 섭섭해했을 것 같다. 나는 결혼 전에 그 누구와의 여행보다도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했고, 창연은 내가 자길 괜찮은 여행 메이트로 전혀 봐주지 않는 것 같다며 "너 결혼해도 여행은 혼자 다닐 거지! 나랑 안 갈 거지! 나랑 가면 재미 없을 것 같으니까!" 떼 들어간 소릴 지르곤 했다. 

결혼하고 나선 혼자 여행 가 본 적 없다. 그거 나쁜 거 아니라는 거 나도 알고 창연도 아는데 연애할 때 둘만 여행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모든 여행은 창연과.

창연은 좋은 여행 메이트인가? 그 얘긴 일 년 뒤 쯤, 이 여행의 막바지에 쓰겠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창연이 자꾸 이 글을 슬쩍슬쩍 훔쳐봐서 뭘 더 쓸 수가 없어. 웃겨.


둘이 하는 세계일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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