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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Jul 18. 2017

EP4. 헬조선전도사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매국노가 된다.

Written by 지랄방구


차이니즈? 재패니즈? 그들이 이렇게 묻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이것에 대해 분노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차피 우리도 벨기에인과 네덜란드인을 구분하지 못하지 않는가?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교정해 줄 뿐이었다. 싸우스 코리언.


두 차례의 수영을 끝낸 후에 소망은 자갈밭에 누워 돈키호테를 읽었다. 마침 전자책 배터리가 방전된 나는 늘 그렇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선글라스 안으로 시선을 숨기며... 슬로베니아 호숫가. 패딩 보트를 타는 사람들. 백드롭으로 다이빙을 하는 아이들. 그리고 군데 군데서 땅이 꺼져라 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거리며 첨벙거리는 아이들. 평화롭다. 여행 중에 휴가 온 기분. 날씨도 좋아 말려 놓은 옷들이 금새 마른다. 수영하다 나와서 몸을 말리고 빵을 먹고 책을 읽는다.


재패니즈? 차이니즈?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분이 우리 눈치를 슬쩍슬쩍 보시더니 수줍게 묻는다. 서양인이라도 처음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은 조심스러운가보다. 가끔 어떤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여겨질때 분노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괜찮았다. 상냥하게 웃으며 싸우쓰 코리언이라고 정정해주고 한가지를 덧붙인다. 두 유 노우 아월 컨츄리? 어 알아 뉴스에서 몇번 봤어 하며 이야기 꽃이 핀다.


우리의 영어는 언제나 취업 대비 토익 준비하는 시절에 맞춰져 있어 모든 우리의 진심을 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역설적으로 유러피언들 중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보다 떠듬떠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린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어제 만난 벨기에 4남매의 엄마 마틴이 딱 그랬다. 가정방문 간호사인 남편과 함께 3명의 듬직한 아들과 1명의 귀여운 딸을 키우는 마틴은 수줍게 우리에게 말을 걸고 나서 서로 잘 못한는 영어로 대화가 폭풍같이 이어진다.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기. 우리 여행의 즐거움들 중 하나다.


늘 그렇듯 호구조사부터 시작한다. 국적, 사는 곳, 나이, 가족관계, 하고있는 일, 여행 온 이유. 그러다가 점점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깊은 이야기의 핵심은 각자 나라에 대한 이야기.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더니 마틴이 말한다. 어머! 나 밥하러 가야 해! 벌써 5시가 훌쩍 넘었다.


너네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을래?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소망이 훅 치고 들어온다. 여행 40일 정도 지나니까 제안과 응답, 거절에 익숙하다. 마틴은 굉장히 기뻐하며 좋아! 그런데 남편한데 물어볼게 아마 된다고 할거야. 남편에게 다녀온 마틴. 우리 텐트에서 있다가 6시 30분에 만나자! 캠핑장에서 갑자기 만난 벨기에 가족과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게 됐다.

마틴은 되게 한국엄마 같았다! "가서 우리 아들들이랑 영어로 대화좀 해줘요"

에피타이저로 준비된 치킨수프, 삶은 감자, 당근 완두콩 볶음, 토메이토 치킨 스튜, 그리고 샐러드 여기에 우리는 밥과 코리언 트래디셔널 스파이시 숩인 고추장 참치 찌개를 준비했다. 우리 둘과 마틴네 식구 여섯이 함께 하는 만찬. 의외로 우리가 준비해간 음식을 잘 먹어서 놀랍고 기뻤다. 밥은 금새 동났고, 서양인들한테는 좀 매울거라고 생각한 고추장 찌개도 '뭐 이정도야..' 하면서 다들 딜리셔스 하며 플레이트에 퍼 담는다. 간단한 식사 후 이어지는 2차 수다.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첫번째 주제는 휴가에 대하여.


헬조선 : 너네 휴가 몇일이야?

벨기에 : 응 2달 정도? 너네는?

헬조선 : 응 우린 한 2주??

벨기에 : 뭐라고 2주라고??

헬조선 : 정확히 말하자면 3주 정도인데 대부분 2주밖에 못써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하거든.

벌기에 : 얼마나 많이 하는데?

헬조선 : 너네 샘숭 알지? 갤럭시 만드는 회사. 거기 다니면 평일에는 밤 10시 정도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해. 근데 재밌는건 샘숭 다니면 일 엄청 많이 하고 돈 많이 벌거든? 근데 중소기업 다니면 일 졸라 많이 하고 돈은 많이 못벌어.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제일 인기있는 직업이 뭔지 알아? 공무원이야. 그래도 그들에겐 저녁이 있거든.


여기서 첫번째로 벨기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휴가가 2주밖에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유럽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휴가 제일 많은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1년 중 3개월이 휴가. 4일에 한번 꼴로 노는 거다. 그리고 벨기에가 2달 독일은 좀 적어서 6주의 휴가가 있다. 6주면 1년 중 42일이 휴가다. 42일이라니. 그러고도 회사가 돌아가나? 아니 그들을 그러고도 회사가 돌아가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저녁도 있고 주말도 있고 휴가도 많다. 나는 농담인듯 진담인듯 던진다. 응 그래서 나 너네 나라로 이민 갈테니까 받아줘.


두번째 주제는 교육

헬조선 : 너네 고등학생들은 언제 자니? 11시? 10시?

벨기에 : 아니 더 일찍. 한 9시쯤?

헬조선 : 뭐? 우린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새벽 1시나 2시에 자. 그리고 6,7시 쯤에 일어나. 우리도 그렇게 했었고.

벨기에 : 그럼 5,6시간 밖에 못잔단 말야? 대체 왜 그래야 하는건데?

헬조선 : 대학에 가야하기 때문이지. 한국 대부분의 직장은 대학 안나온 사람들한테 기회를 주지 않아. 심지어 요즘은 대학 나온 사람들한테도 기회가 별로 없어.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나. 몇몇 아이들은 이것 때문에 자살하기도 해.


수어싸이드. 이 단어를 듣고 벨기에 부모들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체 그런 나라가 있는거냐며. 이 부분에서 사실 나도 숙연해졌다. 정말 너네 나라는 학업이나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거니? 우리는 해마다 몇십명씩 학업과 취업 때문에 목숨을 잃어.


세번째 주제 사회시스템

벨기에 : 그럼 취업 못하는 사람들한테 나라에서 지원해 주지 않아? 우린 실직자들한테  2년동안 나라에서 돈을 주는데?

헬조선 : 아 실업급여 말하는 거구나. 당연히 있긴 하지. 근데 너희와 우리가 가장 다른건 벨기에는 스스로 일을 그만둔 사람한테도 실업급여를 주지? 우린 아니야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람한테만 주거든. 그것도 6개월이 최대야.


두유 노우 헬조선? 아 저 꼰대 아저씨 뭐라는거야

또 한번 이어지는 벨기에 사람들의 탄성. 듣다못한 마틴이 묻는다. 한국의 자랑거리 5개만 말해봐. 나는 더듬더듬 하나씩 말한다. 첫번째는 나와 나의 와이프. 그리고 빠른 인터네  속도. 정이 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다양한 음식. 글로쓰니 되게 금방 나온거 같은데 사실 말하는데 되게 오래걸렸다. 나와 나의 와이프는 농담이고 첫번째 강점이 인터넷 속도라니. 혹시 저녁이 있는 삶과 입시스트레스 없는 학생들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시스템을 빠른 인터넷 속도와 바꿀 수는 없을까?


불과 몇년전만 해도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라는 말이 있었다. 무엇하나 바로바로 처리되지 않고 주말에는 잘 열리지도 않는 상점들. 인터넷으로 바로바로 처리되지 않는 시스템 앞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편리한가 만을 따지며 그렇게 대한민국을 찬양한거다. 그런데 그런 편리함들은 다 부차적인 것들이었다. 빠른 인터넷 속도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산업화의 상징같은 것이다. 빠른 산업화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수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칭찬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우리가 돌봐야 했던 우리의 가정과 아이들은 아픈 상처를 그대로 안아야했다. 곪아서 터졌고, 염증은 어느새 암세포가 되었다.


나는 외국에 나와 매국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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