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지나는 자리마다

한 마디의 숨으로 나는 살아가

by 로아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등이 앞으로 기울었다.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서 뒤엉킨 숨을 겨우 내쉬곤 했다. 셀룰라이트처럼 몸 구석구석에 엉겨 붙은 피로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돌아설 때면 땅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 함께 잠든 밤도 있었고, 맥주 한 캔으로 나를 다독이던 새벽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집 안을 먼저 정리했다. 식탁 밑 부스러기를 그러모으고, 욕실 타일에 맺힌 물기를 닦고, 장난감과 젖은 수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남긴 흔적만을 쫓아다니며 치우고 쓸어 담는 일이 내 하루의 전부구나.’ 그 생각에 혼자 따져 물었다. 나는 오늘 내게 뭘 남겼냐고.

무너질 것만 같았던 그때, 평안에 몸을 맡긴 사람들을 보았다. 건물 1층 유리창으로 요가 매트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숨 하나하나를 고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아, 요가를 좋아했는데.'

잠시나마 여유라는 사치를 부리고 싶어졌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요가원 문을 열었다. 낯선 공간에 처음 몸을 들이밀었는데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빌려 입은 요가복 차림으로 매트 위에 몸을 누인 내가 있었다. 바닥은 따뜻했고 졸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몸이 누워도 마음은 누울 줄은 몰랐다. 자꾸만 남편과 아이들이 마음에 밟혀서 그랬다.

배 위에 손을 얹고 숨을 느껴보라고 강사가 말했다. 손바닥 아래로 나란 존재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잊고 지냈던 세계가 반응했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외출했던 봄날, 카페테라스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오후. 그런 게 숨결을 따라 흘러갔다. 그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나였는데, 이제는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울적했다. 엄마가 주어인 일상에 나라는 단어를 넣을 수 있을까 혼자 물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하루에 쉼표 하나쯤은 찍어 보자,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일상 가운데 숨 고를 빈칸을 마련해 둔다면, 그곳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꼭 멋진 계획이 아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줌의 여유와 잠시 멈춰 선 마음과 자신을 향한 애틋한 안부 같은 것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요가는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기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힘이 되기도 했다. 매트 위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며 나는 나를 되찾아갔다. 내가 내게 도착하는 순간 하나, 애착처럼 쌓여가는 숨 한 마디면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호흡을 따라 움직이는 몸이 나의 '존재함'을 증명해주었기에 엄마로 불려도, 여보라고 불려도 상관없었다.


자주 되뇌었다. 숨결이 지나는 자리마다 내가 있고, 살아있음으로 내가 남는다고.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자명했다. 매트를 펼치듯 하루를 펼쳐 놓고 이름 없는 나를 잠시 쉬게 하는 것. 이것이 나로 살게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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