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기엔 우린 너무 멀지가 않아서
그런 날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와르르 무너져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날. 하지만 나는 선뜻 기대지도 무너지지도 못했다.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까 봐 괜히 미안했고,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세상은 철저히 혼자 살아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방이 사람인데도 나는 내내 외로웠다.
마음을 열 용기가 부족했던 나였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요가 수련도 혼자 하는 쪽이 편했다. 낯선 사람과 눈인사를 나누기가 어색했고, 가벼운 대화에 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매트 위에서 하나의 섬으로 머물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쓸쓸함이 굳은살처럼 박였다.
외로운 채로 살아갈 수 있을까.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직사각형 고무판 위에서 자주 물었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삶에 당연히 딸려 오는 부속품이라고 답하곤 했다. 다쳐도 누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노릇이었고, 고통도 번민도 결국 내 몫이었다.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고 위태로운 마음을 붙잡는 것은 모두 나여야 할 테니까, 고독감을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퍽 씁쓸했다.
요가 수련을 마친 뒤 몸을 누이고 눈을 감으면, 때때로 세상이 좁아졌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안에 나의 모든 세계가 들어 있었다. 이름, 직업, 나이도 중요하지 않은 곳. 이곳의 중심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였다. 수련이란 오로지 나에게 침잠하는 시간. 그 시간이 좋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이 생기곤 했다. 혼자임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오래 이끌어가기가 어려웠다. 다시 알았다. 휘청이는 몸을 붙들기보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가다듬기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내 힘으로만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룹 수련을 할 때면 기분이 묘했다. 바닥에 놓인 매트들 하나하나가 바다의 섬처럼 느껴져서였다. 매트는 각자의 영토였고, 침범당할 수 없는 안전지대와도 같았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몸을 움직였다. 움직임에 빠져들수록 다른 사람의 존재는 잊혀갔다. 비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존재를 살아내면 된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수행하기 바빴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들 자기 수련을 할 뿐인데, 연결되는 감각이 생겨났다.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고독한 수련이 고독할 수가 없구나 했다. 비슷한 결로 움직이는 누군가의 기척이 파도처럼 전해졌고, 소리 없이 흩어지려던 집념들이 몇 번이고 다시 모여들었다. 힘듦에 내뱉어지는 누군가의 한숨이 내 것인 듯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란 생각에 조금 더 견딜 수가 있었다.
차차 알게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아도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는 걸. '그저 당신이 있기에 충분한 날'이 많았다. 그때 나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나란히 떠 있는 섬일 수가 있었다. 각자 다른 리듬의 호흡, 은은하게 일렁이는 몸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안온함을 자아내던 순간이면 어떤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섬이면서도 하나의 군도를 이룬다고.
내 곁을 스쳐 간 이름 모를 사람까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사이의 거리는 여전한데 마치 그의 어깨를 빌리는 것만 같았다.
나를 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느꼈던 외롭다는 감정조차 이미 누군가를 상정한 것이었고, 사람은 사람을 염두에 두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외따로워도 외따로이 사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구에는 82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적어도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이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려볼 수 있었으니까.
쉽게 기대고 다시 무너져보기로 했다. 상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 보기로 했다. 그로 인해 당신과 나의 힘겨움이 덜어지길 바랐다. 내 마음이 말했다. 외로워하기엔 우린 너무 멀지 않다고. 그 말이 작은 위안이 되어 매트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2013년 2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