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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준 Aug 14. 2022

<녹턴>에 대한 짧은 후기

<녹턴>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피아노와 클라리넷 연주에서 탁월함을 보이지만 자폐증으로 인해 페트병 뚜껑조차 혼자 따지 못하는 은성호,

본인이 죽은 다음에도 큰 아들 성호가 홀로 음악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자 하는 엄마 손민서,

엄마가 형 성호를 더 돌보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되면서도 마음으로는 싫은 은건기,

이렇게 세 명이 <녹턴>의 주인공입니다.


영화 <보이후드>처럼, 작품은 세 사람을 긴 시간 좇습니다. 십 년여 가량을 말이지요.


현실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를 가진 입장들이 충돌합니다.

엄마는 가족의 논리를 대변합니다. 그래도 성호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건 엄마와 동생이란 거지요.

동생은 현실의 논리 쪽에 서 있습니다. 다소 모진 듯하지만, 누구도 건기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쉽게 반박하진 못할 것입니다.


선과 악의 대립이라면 극복의 과정이 힘겨울 지라도 혼란스럽진 않을 텐데,

나름의 근거를 가진 두 입장이 부딪힐 때는 문제가 배가됩니다. 힘겨우면서도 혼란스러운 것이지요.

성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영화에는 그의 말이 거의 담겨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고통과 혼란을 먹고 자란다는 듯, 성호의 연주는 점점 좋아집니다. 2017년에는 해외의 큰 무대에 설 정도가 되지요.

그래서 <녹턴>에는 “비극 속에서도 홀로 아름다운 그 음악”이 담깁니다.


작품은 현실과 이상, 일상과 예술, 고통과 위안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대립의 화해에 대한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녹턴> 사려 깊습니다. 인물을 규범에 가두지 않고,  인물의 규범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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