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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준 Dec 22. 2021

삶의 솜씨

<당신얼굴 앞에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진실을 품는다. 이재명이냐, 윤석열이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나 철학 토론처럼, 정답이 없어 보이는 영역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란 뜻이다. 눈앞의 대상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엇나간다.


문제제기


1. 클래식 또는 미스터리 버전


“현상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을 나는 그것의 질료라고 부르며, 그러한 현상의 잡다[한 것]가 일정한 관계에서 질서지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현상의 형식이라고 부른다.” “비록 모든 현상들의 질료는 단지 후험적으로만 주어진다하더라도, 그러나 그것들의 형식은 그것들을 위해 마음에 선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따라서 모든 감각과 분리해서 고찰될 수 있어야 한다.”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 1》, 아카넷, 2011, p. 240.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에게 들어온 데이터는 경험 이전에 준비된 형식에 의해서 틀 지워진다.


2. 뇌과학 혹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버전


뇌 바깥에는 빛도 없고, 색도 없다. 뇌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에너지가 있다. 눈, 코, 입, 귀를 통해 들어온 에너지는 이내 전기 에너지로 바뀌어 스파이크를 일으키고, 뇌는 스파이크에 대응하는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는 이 프레임을 볼뿐이다. 그러니까 뇌가 스파이크에 걸맞다고 여긴 모양, 그리하여 뇌가 우리에게 전한 모양을 통해서 우리는 눈앞의 것이 통바지를 입은 할아버지인지 와이드 팬츠를 입은 힙스터 청년인지를 구분한단 것이다.

뇌과학에 의하면, 우리가 보는 건 눈앞의 당신 얼굴이 아니라 뇌 안에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얼굴형이다.


칸트와 뇌과학이 말하는 건, 각자에겐 각자의 진실이 있고, 따라서 내 진실이 네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렇게 우리는 영원한 섬으로 사는 걸까.



홍상수의 답변 : <당신얼굴 앞에서>



1. 미끄러질 땐 포옹을


상옥(이혜영)은 메모를 멈추고 혼잣말인지 기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을 읊조린다. 내 얼굴 앞 모든 것이 다 은총이다.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이 천국이다.


잠에서 깬 정옥(조윤희)은 상옥의 동생이다. 꿈에서 좋은 꿈을 꿨다는데 상옥은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정옥이 좋은 꿈은 남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생은 오랜만에 본 언니가 너무 말라서 아파 보인다고 말한다. 상옥은 정옥을 알 수 없고, 정옥은 상옥을 알지 못한다.


호수 옆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는 둘. 동생은 언니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살았으면 한다. 그러면서 한 2억만 있으면 대출받고 어쩌고 해서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운 좋게 청약이 돼서 한몫 잡았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은 채. 언니는 2억은커녕 200만 원의 저축이나 있을까, 하고 답한다. 뭘 하고 지냈기에 그 정도 돈도 없냐는 동생의 말에 언니는 리쿼 샵을 했다고 응답하는데, 동생은 이를 호프집이나 바(bar) 정도로 알아듣고, 언니는 이를 병 채 술을 파는 소매상으로 정정해준다. 동생은 계속해서 눈앞의 언니를 파악하는 데서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정옥이 붙잡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니의 상(象)이다. 정옥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고, 하나밖에 없는 형제인데 너무도 창피하다고 이내 반성을 해보지만, 여전히 서로를 잘 알지 못하게 된 게 언니 탓이라 말한다.


공원에서 상옥과 정옥은 행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한다. 행인(서영화)은 상옥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본 적이 있단다. 아주 고우시고 예쁘시다면서. 후에 상옥은 사진 찍어준 사람이 좋은 사람 같다고 말한다. 정옥은 언니가 티브이에 한 번밖에 안 나왔는데 어떻게 알아봤는지가 신기할 뿐이다. 그러면서 동네의 명물인 철교에 가보지 않겠냐고 언니에게 제안하는데 사실 상옥에겐 고소공포증이 있다. 상대를 파악하는 건 여전히, 참으로 쉽지 않다.


<당신얼굴 앞에서>는 계속해서 미끄러짐의 순간을 담는다. 정옥은 자신의 아들이 하는 떡볶이 집에, 늦은 점심 약속이 있(는 줄 아)는 상옥을 데리고 간다. 떡볶이 집 직원은 정옥의 아들과 사귀는 여자 친구다. 정옥은 아들과 여자 친구가 닮았다고 하지만 상옥이 볼 땐 전혀 그렇지 않다. 점심 약속 때문에 음식이 부담스러운 상옥이지만 직원은 사이다를 두 캔이나 가져다준다. 한편, 정옥이 시켜준 떡볶이를 먹다가 상옥은 옷에 양념을 흘리고 만다. 약속이 있는데 옷의 얼룩이 무척 신경 쓰인다.


뒤늦게 나타난 정옥의 아들이자 상옥의 조카는 100달러가 든 지갑을 이모에게 선물한다. 미국에 가서 쓰라는 듯이. 후에 우리는 상옥이 미국에 갈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그녀가 아찔한 천국으로 가야만 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상옥은 조카가 고맙다. 둘은 포옹을 하고, 상옥은 뒤늦은 점심 약속을 향하는 택시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조카의 마음을 곱게 받아들인다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게 해 달라고.


이 순간에도 엇갈림은 계속된다. 종로에서 만나자던 감독이 음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인사동의 술집 ‘소설’로 장소를 바꿔야 한다는 게 내용이다. 그때 옛 생각이 났는지 어릴 적 살았던 이태원 집으로 간 상옥은, 그곳이 옷과 꽃 등을 파는 매장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매장 주인(김새벽)이 건네준 매실차가 고맙긴 하지만 상옥은 금세 후회한다. 떡볶이 얼룩은 티셔츠를 묶어서 감췄지만, 과거의 기억은 묻어두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 얽매인 듯한 행동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옛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상옥. 그 순간, 매장 주인의 딸인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카메라를 가린다. 주인은 분명 이태원 이곳은 매장이고, 집은 인천이라고 했는데, 아이는 인천도 우리 집이고, 이태원도 우리 집이라고 말한다. 상옥은 정말 예쁘다며 아이를 껴안는다.


동생 정옥은 한순간도 언니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기가 언니일 거라 믿고 있는 모습만을 볼뿐이다. 또는 그 나이대의 여성으로만 상옥을 볼뿐이다. 조카 역시 상옥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상옥은 동생과 조카가 고맙다. 정옥과 있을 땐 함께 하는 시간을 붙잡으려 노력하고, 조카의 기특한 마음을 마주할 땐 조카를 껴안는다. 매장 주인의 딸은 상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이에겐 이곳이나 저곳이나 다 나의 장소이다. 여기·지금을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일도 없고, 후회의 저장고로 삼는 일도 없다. 여기·지금을 순전히 우리 집으로 여길뿐이다. 감독은 우리가 미끄러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순간을 꽉 껴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2. 나에게서 헤어나


이제야 인사동 소설이다. 상옥은 점심 약속인 줄 알았건만 감독(권해효)은 점심때가 지났으니 식사를 하고 왔을 거라 생각했단다. 감독은 홍상수의 다른 영화였다면 주인공에게 부여되었을 직업인데, 이번에는 여배우 상옥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인물에게 주어졌다. 감독은 상옥이 선사한 감동의 순간을 고백한다. 90년, 91년 영화의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말이다.


술을 꽤 마신 둘. 감독의 부탁으로 술집에 있는 기타를 연주하는 상옥은 연주 중간에 감독에게 묻는다. 왜 조연출 먼저 들어가라고 했나요. 감독은 아니라 답했지만, 상옥은 정확히 파악했다. 분명 감독이 가라고 했다.


장편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상옥은 감독에게 자신이 시한부라서 출연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독은 너무도 슬펐는지 욕을 하며 운다. 상옥과 감독은 술을 더 마신다. 상옥은 아직 죽고 싶은 마음을 품어본 적 없었다는 감독에게 자신의 기억 하나를 꺼내놓는다.


17살 때의 일이다. 죽으려고 서울역 광장을 가로지르는데,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느 정도냐면 기름칠을 한 아저씨의 얼굴을 핥고 싶을 정도였다. 죽는다고 하니 감상적이 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실체가 가슴으로 느껴진 거다. 진짜 세계를 본 거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 최근 다시 생각났다. 모든 건 은총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러니 두려울 것도 없다. 남는 것은 자유뿐.


감독은 감동했는지, 연민 때문인지, 성욕 때문인지, 당장 내일 여행을 가서 단편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다. 상옥은 감독에게 결혼은 했는지, 자녀가 있는지 묻는다. 감독은 결혼했고, 자녀도 있다고 말한다. 상옥은 다시 묻는다. 나랑 자고 싶냐고. 감독은 괜찮으시다면 그러고 싶다 답한다. 상옥이 답한다. “고마워.”


어느덧 비가 쏟아진다. 술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둘은 좁은 골목에서 하나의 우산을 나누어 쓰며 담배를 피운다. 전에 없이 인상적인 앵글로 카메라는, 다른 곳으로 미끄러질 수조차 없는 좁은 골목에서 나란히 팔짱을 끼고 있는 두 명의 뒷모습을 비춘다. 언젠가 이 순간이 오해와 제멋대로의 해석과 번복과 무례와 형식적인 사과로 점철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것이 괜찮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동생의 아파트 거실에서 잠에서 깬 상옥. 감독의 음성 메시지가 와 있다. 어제의 약속은 이행될 수 없는 거였고, 미안하다는 것이다. 상옥은 메시지를 다시 들으며 배를 잡고 웃는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감독이, 그리고 자신이 우습다는 듯이. 동생 정옥은 안방에서 아직 자고 있다. 상옥은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상옥을 가까이 잡았던 카메라는 페이드 아웃한다. 이제 상옥과 정옥은 비슷한 크기이다. 방금 전까지 꿈을 꾼 사람이 여태 자는 사람에게 묻는다. “무슨 꿈을 꾸니?” 상옥은 정옥이 전날 꾼 꿈의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했다. 알지 못한다.


영화 마지막에 상옥과 정옥이 비슷한 부피를 지닌 것처럼, 우리 모두의 신세는 엇비슷하다. 각자의 틀로 각자의 세계를 해석하는 처지이고, 상대의 해석을 알지 못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상옥은 종종 정확한 인식을 하곤 한다. 상옥은 오해 아래 감춰진 따뜻한 마음을 보았고, 경외와 연민과 성욕이 함께 할 수 있음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가 실체, 실재를 보는 건 죽으려 했을 때이다. 상옥은 자기로부터 헤어났다. 걸핏하면 과거와 미래로 미끄러지는 자신의 경향에서 벗어났다. 익숙한 사고의 회로에서 벗어났다. 나로부터 빠져나온 상옥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얼굴 앞에서 당신얼굴을 보려 한다. 아름다운 건 껴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걸로 놔두고, 우스운 것은 웃으면서.


최근 몇 작품에서 신세한탄을 필름으로 옮겼다는 혐의를 받은 홍상수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에게서 헤어났다. 과거라는 후회와 미래라는 불안을 넘어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려 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이 아니고 여배우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이혜영이 상옥이 된 건 이러한 구도에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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