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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Apr 16. 2016

용눈이오름 별빛투어 ver.2

#Day 2_ 하늘과 바람과 별과 오름 그리고 두 개의 불빛

백약이 오름 즉흥 투어 후 1층 카페에서 자몽에이드로 갈증을 풀고 있는데 어제 용눈이 오름 별빛투어에 같이 갔던 게스트 중 한 분이 오늘 광치기 해변에 다녀왔는데 정말 예쁘다며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날의 여행을 서로 얘기하며 잠깐 노닥거리다 보니 바닷가에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동쪽 바닷가라서 서쪽에서 보는 것만큼의 노을은 아니겠지만 카메라를 챙겨 들고나갈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스트레스 도피처로 제주를 선택한 도시 생활자에게는.


노래 하나에 꽂히면 무한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는 나는, 그때 한참 박윤하의 "그대 내 품에"에 빠져있었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DSLR로 사진을 찍다 말다 하면서 바닷가에 서있는 동안에도 "그대 내 품에"를 들었다. 질릴 때까지 한 곡만 반복해서 듣는 습관 때문에 종종 특정한 시기 또는 장소가 노래로 기억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노을지는 세화 바닷가는 박윤하의 "그대 내 품에"로 기억되어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 시간, 그 바닷가가 생각이 난다.

 

붉은 기운이 다 사라지고 어둑해진 바닷가를 뒤로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별빛투어에 갈 준비를 했다. 어제보다 훨씬 많은 게스트들과 함께 사장님 차를 타고 출발했다. 별빛투어가 처음인 게스트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오늘도 아끈다랑쉬와 용눈이 중 용눈이 오름이 선택되었다. 오늘 또 가도 괜찮겠냐고 사장님이 넌지시 물어봐주었지만 당연히 '노 프라블럼'_어느 오름이든 데려가만 준다면 좋으니 상관없다.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유나씨 안 힘들어요? 나 힘들어요."


낮에 백약이 오름에 다녀와서 또 오름을 오르기가 힘들지 않냐고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내게 물어봤다. 그런데 "나 힘들어요"라는 그 말이 왠지 그냥 듣고 넘겨지지가 않았다. 빡빡한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제주를 만끽하는 여행자와 이 곳이 삶의 터전인 게스트하우스 운영자의 마음이 같을 순 없겠지. 언제 또 올지 모르기에 이틀 연속 같은 시간에 같은 오름을 오른대도 마냥 좋은 여행자와 달리, 좋든싫든 항상 그 시간에 (대부분)같은 오름을 올라야 하는 사장님에게는 내가 만끽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가끔은 지겹기도 한) 일상이겠구나 싶었다. 인생 혹은 삶_이 동반하는 문제는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없을 순 없으니까.

 

바닷가를 환히 밝히던 집어등 켠 배들은 어제보다는 훨씬 적어 보였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별은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았다. '쏟아지는 별'을 마주하려면 아주아주 맑은 날 더 깊은 중산간 오름을 새벽 중에 올라가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잠깐의 자유시간을 갖고 내려오는 길에 다랑쉬 오름을 밝히고 있는 두 개의 불빛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잃어버린 마을'들 중 하나가 다랑쉬 마을이었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두 개의 높은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구나, 문득 마음이 무거웠다. 하늘과 바다, 바람과 오름 그 자체로 나에게는 평화인 이 섬이 품고 있는 슬픈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시간은 모든 일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지만, 수십 년이 지났어도 그 역사의 현장에 서면 느껴지는 참담함의 무게까지 줄여줄 순 없는 것 같다. 비극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는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 잘 안 보게 되긴 하지만, 지슬_은 꼭 한 번 봐야겠다고 용눈이 오름을 내려오는 길에 생각했다.


올라갈 때만 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보니 컨디션이 좀 떨어진 게 느껴진다. 카페에서 카모마일티 한잔을 사들고 방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이틀째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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