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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Oct 24. 2015

낯선 사람과의 첫 식사

#Day 1_ 여행지에서의 낯선 만남은 영화 같은 일(이 아니라 영화)

2012년 겨울, 가족여행 때 알게 된 후 제주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리는 동문시장_


제주에서의 첫 식사는 든든히 먹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꽤나 올라온 순댓국 집에 들어갔다.

혼자라서 뻘쭘한 티는 속으로 삼키고 당당하게.


다행히 빈 테이블이 몇 개 있어 눈치 보지 않고 앉았다.

"순댓국 하나요"

"순댓국 안돼요"

"네?"


연세가 좀 있으신 아주머니가 지금은 순댓국이 안된단다.

아들로 보이는 청년은 따로국밥은 안되고 순댓국은 된다는데 아주머니는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마침 순댓국이 떨어졌을 수도 있지.

혹은,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는 손님은 반갑지 않을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이해를 못 할 건 아니었지만, 들어갈 때와 달리 뻘쭘한 티를 숨기지 못하고 나왔다.



'대충 아무거나 먹을까'

의기소침할 뻔했으나, 두 주먹 불끈 쥐고 고사리 육개장으로 유명한

심지어 얼마 전에 방송까지 탔던 집을 검색해서 살짝 길을 헤매다 찾아냈다.


근데, 여긴 심지어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뒷 분들은요?"

"두 명이요"

"잠깐 기다리세요"


뻘쭘함을 삼키고 줄을 서 있는데, 배낭을 맨 남자가 혼자 들어왔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물으신다.

"두 분 합석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니면 따로 해드려요?"

"아, 네 저는 뭐 상관없어요..."

"네, 저도 상관없어요"


생전 처음 본 (남자)사람과 마주 앉아 밥 먹기_

혼자 여행하다 보면 생길 법한 일이지만 첫 날 첫 식사에 일어날 줄이야...

(그 후로 일주일 내내 안 일어났다는 건 안 비밀+안 함정)



"비자림에서 만난 (못 먹는) 고사리들"



각자 시킨 고사리 육개장이 나왔다.

고사리와 분리될 생각을 안 하는 걸쭉한 국물이 속을 훑어준다. 좋다, 매우 좋다.


모르는 사람 앞에 두고 밥 먹느라 불편하기도

그래도 앞에 누구라도 앉아있어서 편하기도 한 적막 속의 식사가 절반을 지날 때쯤_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네, 방금 도착했어요.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아니요, 저는 집 보러 왔어요, 오늘 올라가요"

"아, 그러시구나, 여기 정착하시려는 건가 봐요?"

"네, 직장은 구했는데 집이 안 구해져서, 어디 어디 갈 거예요?"

"첫 숙소는 세화리고 송당리 거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모슬포 지나서 협재까지요"

"아, 한 바퀴 도시네"


적막_


"중산간 갈 거면 가시리도 좋아요, 제가 가본 데 중엔 가시리가 좋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다음엔 그 쪽으로  가봐야겠어요"


20대 중반부터 7-8년간 휴가 때마다 제주를 찾았다는 그는 본인이 좋은 곳들을 알려줬다.

대화와 적막과 적막과 대화 사이에 그는 식사를 마쳐가고 있었고, 나는 그보다는 더디게 먹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자꾸 내려오다가 정착하더라고요, 그런 여자 분들 꽤 많아요"

"그러니까요, 저도 마음 같아선 여기서 살고 싶어요"


먼저 식사를 끝낸 그는 나를 배려한 건지 비행기 시간이 남아서인지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눈치가 보이기도,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열심히 속도를 높여 한 그릇 깔끔하게 클리어_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식사도 다 끝났고 이제 일어나면 끝인데 그가 물티슈를 건넨다.

"물티슈 드릴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난 이제 올라갈 거니까 필요 없거든요"

"아, 이거 저 다 주신다는 거였어요?"

"네"

"아... 감사합니다"

"아직 결혼 안 했죠?"

"...네"

"여행 좋겠다,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요 홀몸 아니면 집 구하기도 힘들어요"



낯선 여행지에서의 낯선 사람과의 낯선 만남의 로망_ 뭐 그런 거, 당연히 실현될 리 없이,


'아, 결혼하셨구나' (그렇다고 영화 같은 일을 기대하거나 그랬다는 건 아님, 정말 아님)

그러고 보니 건네주신 물티슈가 아기전용 물티슈다. (허허)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좋은 여행하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는 그가 갈 방향으로, 나는 일단 그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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