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유나 Nov 13. 2015

세상 여유 다 가진 듯

#Day 2_ 진정한 힐링의 시작은 멍 때리기

9월 제주 일주일의 두 번째 날, 오늘의 일정은 '빈둥'거리기_


오늘 하루 뭐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으므로, 느지막이 일어나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다소곳한 모습으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조식을 내주신다.

마늘버터를 발라 살짝 구워낸 미니 크로아상 2개와 연어샐러드와 귤, 그리고 주스 한 잔.


"게스트 하우스의 50가지 매력 _ One. 조식포함"



책꽂이에서 제주 컬러링북을 꺼내다 아침을 먹으며 훑어보니 세상 여유는 내가 다 가진 것 같다. 

회사였으면 지금쯤 뭐하고 있었을까 따져보니 지금의 여유가 눈물나게 감격스럽다.


아침도 먹었고 이제 정말 할 게 없는데, 마당에 세워진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 자전거 타는거 진짜진짜 좋아하는데, 언제 타고 안 탄건지 기억도 안난다.

그래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산책을 나섰다.



하늘과 구름이 적당히 섞인,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에 바람 가득 맞으며 자전거 타기_


처음에는 사장님이 추천해준 '별방진'에 가볼까 싶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그냥, 그러고 싶어져서) 마을쪽으로 길을 잡았다. 3개월 전, 지난 6월에 묵었던 숙소도 세화리_

이 근처라서 주변 풍경이 익숙하다. 그래서 더 좋다. 이 섬에게 내가 조금은 '덜' 이방인인 것 같아서.


게스트 하우스를 다시 지나 마을 안쪽 길로 접어드니, 큰 나무 세 그루 아래 쉼터가 있다.

벤치들이 있고 심지어 그네도 있다. 이정도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네에 앉았다. 햇빛 아래는 늦여름인데, 그늘 아래는 초가을이다.


"내가 앉아있던 그네와 내가 바라보던 풍경"


정확히 몇 시간이나 앉아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나온 시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시간_

대충 따져봐도 두 시간은 넘게 앉아있었다. 아무 것도 안했다. 아무 생각도 안했다.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때리고 나니 주변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참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 주워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데 부리로 아스팔트 바닥을 콕콕 쪼으며 뛰어다닌다.

(그냥, 또 그러고 싶어져서) 참새 먹으라고 줄 과자를 사겠다며, 굳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가게로 향했다.


참새 주기에 적합한 과자는 '죠리퐁'만한게 없다 싶어서, 한 봉지 사들고 다시 쉼터로 돌아왔는데

어지간히 민감한 녀석들이라 한 발자국만 다가서도 후다닥- 날아가버린다.

가까이서 보는 건 포기하고 참새가 오가던 바닥에 죠리퐁을 한두 주먹 뿌려놓고 물러서 있으니

한두 마리, 세네 마리 점점 더 모여든다. 근데, 한 마리가 한 알을 콕- 집으면 너도나도 빼앗으려 달려든다.

'아니 저기.... 많잖아 여기, 바로 옆에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왜 먹질 못하니'



참새도 주고 나도 먹다 보니 참새 준 것보다 내가 먹은게 더 많나 싶을 즈음- 

일어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매거진의 이전글 용눈이오름 별빛투어 ver.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