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해서 아이를 가졌고, 축복받으며 낳았으며, 아이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읊조리는 말이 있다.
세상에, 어쩌다 엄마가 된 거지!
사실 어느 정도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부모라는 단어와 안 어울렸다. 단적인 예로 나는 집에 붙어 있는 일이 없었다. 평일이면 야근과 출장 때문에, 주말이면 공부와 글쓰기와 친목 모임 때문에 바빴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주 드물게 아무 일 없는 주말이면 오전은 어떻게 집에 붙어 있었더라도 오후 2시 정도만 되면 지루해서 남편한테 나가자고 징징거렸다. 매번 그러는 나를 보며 남편은 아예 그 시간을 내 이름을 따서 '솜타임'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졌다. 결혼한 지 어느덧 만 4년이 되었고, 부모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부모가 안 될 자신은 더더욱 없었으며, 남편도 나도 아이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아이 계획을 많이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런 내게 다들 한결 같이 하는 말이 '낳으면 어떻게든 된다.'였다. 사실 그 말을 믿었다. 부모가 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완벽하게 준비가 돼서 부모가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되지 않았다!
다들 어떻게든 된다고 했지만... 어떻게 안 됐다!
아이가 생기고 천지가 개벽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낯설었고, 달라졌다. 나도 내 딸과 마찬가지로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듯했다. 육아는커녕 나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전에는 내 일 열심히 하고 바쁘게 살면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나부터도 '아기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관부터 흔들렸다. 그야말로 모든 게 바뀌었다.
문제는, 나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바뀌었으니 나도 바뀌어야 했지만 나는 아이 낳기 전 그대로였다. 엄마 춘기였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춘기 때처럼 나는 아이는 낳았지만 아직 엄마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흘렀다. 그간 나는 아이 똥 기저귀를 능숙하게 갈게 되었고, 아이가 웬만큼 울어서는 당황하지 않게 되었으며, 누구 엄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다.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고, 책도 한 권 썼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 울적해지고, 자주 당혹스러우며, 친정 엄마 없이는 못 산다. 1년이 지나면 엄마라는 역할에도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이건 익숙해질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브런치 매거진은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