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데는 자신 있었다. 1~2시간씩 자고 일한 적도 있었고, 히말라야 산행을 갔을 때는 고산증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계속 헛구역질하면서도 나 때문에 동행한 친구가 포기할 게 미안해서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하면서 해발 4,130m 목표지에 도달했었다. 물론 이 두 경험보다 육아가 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었다.
고산증에 시달렸던 이 때가 내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때인줄 알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ㅎㅎ
하지만 내 시간이 없는 건 버티기 힘들었다.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였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잠투정이 심한 아이를 한 시간 넘게 공들여 재우고 나면 나도 쓰러지듯 잠들었고 중간중간 잠든 아이의 칭얼거림에도 벌떡 벌떡 일어나고 나면 아이와 함께 9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피곤했다. 아이는 낮잠을 자주 잤지만 거의 3, 40분 만에 깼다. 그 시간은 던져놓은 기저귀를 치우고 아이 똥오줌 묻은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면 끝이었다.
아주 바지런히 굴면,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이리저리 모으면 하루 1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먹을 것인가, 잘 것인가, 씻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것인가. (이 또한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 남편이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먹고 자고 씻고, 삶의 기본권이라 생각했던 일들 조차 더 이상 기본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잠을 택했다. 아이를 낳을 때 오래 진통을 하다가 결국 응급 제왕절개를 했는데 그 후유증인지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래선지 아니면 산후조리가 더 필요했던 건지 조리원에서 나와서도 툭하면 잠이 쏟아졌다.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먹는 걸 택했다. 주로 엄마가 해 준 반찬을 꺼내 즉석밥과 먹었다. 혹시 그릇 소리 때문에 아이가 깰까 봐 조심조심 먹고 싱크대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끝이었다. 계란 프라이 하나 안 해 먹었는데. 제 아무리 먹는 게 중요한 나지만 내 소중한 자유시간을 이렇게 먹는데 써 버리긴 억울했다.
그때부턴 나 자신으로 사는데 그 시간을 썼다. 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장을 담그거나 두부를 만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생존과 육아와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을 했다. 그 1시간 반을 채우는 건 그런 일들이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이 살아 있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믹스커피라도 한 잔 곁들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었다. 아직 쓰레기통에 못 넣은 기저귀는 못 본 척하고, 다 돌아간 건조기는 그냥 내버려 두고 책상 앞에 달려가 앉았다. 뭐 대단한 걸 쓰거나 엄청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이 즐거웠다. 아이가 깨지 않는 이상 내 집중력은 깨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분명 하버드를 가고도 남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못 자고 못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듬이 좀 가셨다. 덕분에 집은 난장판과 조금 복잡함의 경계를 오갔고 언제나 속이 헛헛했으며 졸린 눈을 했지만, 내겐 그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내게 어떤 시간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