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는 커다란 책상이 하나 있었다. 책상이라기엔 너무 길고 커서 6인용 식탁인가 싶기도 한 그 책상은 남편과 내가 함께 쓰기 위해 맞춘 가구다. 퇴근하고 나면 그 책상에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각자 할 일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책상은 거실 끝으로 밀려났다. 거실은 아이의 공간이 되었다. 매트, 바운서, 장난감 등이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했고 그 사이를 아이가 헤집고 다녔다. 책상은 구석으로 밀려난데 그치지 않고 모서리 보호대와 울타리 등으로 제 몸을 감추어야 했다.
마치 그 책상처럼 나만의 시간도 한쪽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거실 중앙으로 복귀를 꿈꾸며 여전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한 책상처럼 나도 호시탐탐 나만의 시간을 꿈꿨다. 주로 아이 낮잠시간을 노렸지만 가끔은 너무 피곤해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 버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고 나면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은 어딘가 후련하지 못했고, 그런 날은 꼭 새벽에 깼다. 아이 때문에 평소에도 새벽에 한두 번씩 깨지만 대개는 금방 잠든다. 하지만 그런 날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날도 그랬다. 새벽 3시, 잠에서 깬 나는 주방으로 슬금슬금 나와 베이킹 도구를 챙겼다. 브라우니를 굽기로 했다. 보통 내 시간이 생기면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만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졸렸다. 잠들기 싫을 뿐 졸리지 않은 건 아니라 잠이 몰려왔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 했다. 브라우니는 자주 만들어서 어려울 건 없었지만 혹시 소리를 내서 아이를 깨울까 내내 긴장했다. 긴장한 덕에 오히려 잠이 깼다.
브라우니 반죽을 완성해 오븐에 넣고 나니 긴장이 한시에 풀리며 졸음이 밀려왔다. 브라우니만 다 되면 자야지 하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때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소리 인가 싶어 다시 바짝 긴장했다. 부엌과 거실의 불을 모두 끄고 살짝 방문을 열었다. 아, 다행히 남편이었다. 불이 꺼진 방, 남편이 아이와 멀리 떨어져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안 잤어?'
'너도 안 잤어?'
아이를 낳고는 각방 생활을 하고 있어 (번갈아 가며 아이를 데리고 자고 있다.) 서로가 깬 지 몰랐다. 남편도 중간에 깨서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반가웠다. 살짝 웃음도 났다.
사실 나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스스로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육아를 힘들어 하긴 하지만 그건 주로 체력적인 문제 같았다. 아이를 보는 게 힘이 들고, 밥을 못 챙겨 먹고 씻을 시간이 없어서 힘들지 나처럼 내 시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엄마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육아 에세이를 읽어봐도 아이 낮잠시간에 취미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올 뿐 책의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해서였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을 봐도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처럼 거실의 책상에 앉아 책 읽거나 글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던 남편이지만 아이를 낳고는 자기만의 시간이 전혀 없어졌다. 퇴근하면 바로 육아나 집안일에 돌입했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틈만 나면 내 시간을 찾는 나와 달리 남편은 느긋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모든 걸 보상받는 듯 보였다. 그런 남편을 보며 더더욱 겁이 났다. 나만 이런 걸까, 내가 나쁜 엄마인 걸까 하고.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방 한 구석에서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의지해 전자책을 읽는 남편을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도 책이 읽고 싶었던 거다. 내 안도감을 얘기하자 남편은 누구나 나 같은 마음이 들지 않겠냐며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답했다.
그 사이 브라우니가 완성됐다. 따끈한 브라우니와 지금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서 새벽 4시에 남편과 둘이 브라우니를 먹었다. 오래간만에 마주 보고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그렇다. 매일 보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듯 안부를 물었다.) 요즘 하는 생각을 나눴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대가는 내일 아주 비싸게 치르리란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오밤 중의 데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