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모도 한 번 키워볼까 - 50일 기념, 메주 띄우기

어쩌다 엄마

by 솜대리




그러니까, 발효에 관심을 가진 건 임신했을 때부터 였다. 생각해보면 장, 술, 치즈 등등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발효식품이었고, 자연의 힘으로 음식이 부패하지 않고 더 맛있어지는 게 신기했다. 출산하면 다니기 힘들 테니 미리미리 쫓아다니며 강연을 듣고 체험을 했다.


한 번은 식초를 배웠는데 집에서 1시간 반 거리의 강연장에서 식초가 될 술을 4L를 빚어 집으로 낑낑 거리며 들고 왔다. 술이 잘 익은 후 식초가 되도록 종초를 넣어주어야 했는데 임신부가 술을 마셔볼 수 없으니 술도 못하는 남편이 틈만 나면 맛을 봐주었다. 돌이켜보면 같이 수업을 들을 수강생들이나 남편에게 어지간히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들 배려해 준 게 감사하다.


술.jpg 7개월 임산부가 지하철 타고 이고 지고 집에 가져온 술 (쌀과 토마토 식초 재료)


아무튼 그렇게 다니다가 아이를 낳았다. 난산이라 몸이 많이 상하기도 해서 100일은 산후조리에 집중할 셈이었다. 발효와 관련된 책들만 몇 권 사다 읽었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고 읽다 보니 더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보이는데, 발효는 사람이 아닌 자연이 해주는 거라던데 하고 몸이 들썩들썩거렸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아이를 낳은 지 50일 만에 메주를 띄웠다. 진짜 정말 참으려고 했는데, 장을 공부하다 보니 아무리 늦어도 12월에는 띄워야겠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쇼핑 중 이 옷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게 마지막 남은 한 장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분이었달까.


마침 남편도 출산 휴가 중이라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장을 여러 번 담가 본 엄마도 있었다. 메주 띄울 날짜를 정해두고는 벼락치기하는 마음으로 바짝 공부를 했다. 메주 만들고 띄우는 방법과 이후에 장 가르고 된장, 간장을 숙성시키는 방법 등등 숙성 과정에서는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겠지만 메주를 만들기 자체는 할 만해 보였다. 콩을 오래 불리고 오래 삶아서 모양만 내면 됐다.


콩 삶기.jpg 처음이니까 이만큼만(?) 삶아 보았다.


하지만 아이고 역시, 그게 쉬우면 다른 사람들도 메주를 만들었겠지. 배도 다 안 들어간 산모는 콩을 삶는 과정에서 이미 지쳐 버렸다. 뭉근한 불로 삶아야 하고 눌지 않게 계속 신경 써야 해서 콩을 삶는 8시간을 내내 불 앞에 붙어 콩을 저어야 했다. 산모의 필수품 손목 아대는 처음부터 차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엄마 손이 더 많이 들어갔다. 엄마는 이럴 줄 알았다며 투덜투덜하면서도 전문가의 손길을 보였다. 내가 간간히 엄마를 '보조'하는 동안 남편은 애를 전담 마크했다.


'애도 키우는데 효모도 한 번 키워볼까'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효모를 키우는 것도 육아만큼 쉽지 않았다. 그리고 육아만큼 효모 키우기도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하하.


메주.jpg 결국 만들긴 만들었다.





앞으로의 이야기


프롤로그 - 어쩌다 엄마가 된 거지


1.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하루 딱 1시간 반 - 먹느냐, 자느냐, 나 자신이 되느냐

야밤의 데이트 - 새벽 4시, 우린 둘 다 깨어있었다

효모도 한 번 키워볼까 - 50일 기념, 메주 띄우기

책을 쓰다 - 수유하며 책 쓰기


2. 엄마라는 직업은

내가 맘 카페에서 활동할 줄이야 - 어떤 직업보다 동료애가 절실하다

문화센터의 진짜 목적 - 시간 때우기와 커피 한 잔의 여유

남편과의 눈치 게임 - 잘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세상에는 고를 게 왜 이렇게 많나 - 백일과 돌잔치와 촬영과 장난감과 등등등

이유식의 세상 - 세상에 절구라니


3. 아이와 나

우리 관계는 전우애로부터 시작됐다 - 아이가 태어나던 날

왜 잠을 못 자니 - 아이가 우니 심장이 아프더라

아이를 눈 앞에 두고 아이 사진을 보는 심리 - 한 다리 건너야 더 예쁘다

아이가 기기 시작하던 날 - 너의 자유에 기뻤다


에필로그 - 가장 강렬했던 1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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