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50일쯤 났을 때부터 메주를 시작으로 요리에 몰두했다. 청국장, 고추장, 두부, 막걸리, 식혜 등등 이전부터 만들고 싶던 음식들 위주였다. 맛은 있었지만 가성비는 정말 형편없었다. 두부 만들 때는 콩이 잘 안 갈린다고 만들다 말고 새 믹서기까지 사 왔다. 아이를 낳고 관절이 안 좋아졌는데 음식을 한다고 계속 쓰다 보니 나중에는 산후풍 한약까지 지어먹어야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음식 하느라 밥 먹고 잘 시간이 없어지고 손목이 시려도 재밌었다. 그렇게 두 달여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든 두부
두 달쯤 지나고 나니 더 이상 만들고 싶은 음식도 없었고 아대와 약으로 버티던 관절도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던 무렵 마침 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책을 쓰게 되었다. 큰 일이고 처음 하는 일이라 걱정도 됐지만 그래서 더더욱 도전해 보고 싶었다. 몇 년 간 써온 칼럼을 책으로 엮는 기획이라 처음부터 쓰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었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역시나 시간이 제일 문제였다. 아무리 시간을 쥐어짜도 부족했다. 절대적인 시간도 많이 필요했고 예열 시간도 필요했다. 음식을 할 때는 아이가 잠들면 바로 태세 전환을 할 수 있었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집중할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게다가 칼럼은 막상 책으로 엮으려 보니 잘 어우러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업데이트할 내용도 있어서 거의 다시 쓰게 되었다. 시간을 짜내야했다. 엄마, 시어머니, 남편의 도움도 종종 있었지만 결국 매일 매일 시간을 만들어 내는 건 내 몫이었다.
아이 낮잠 시간 만으로는 부족했다. 궁리 끝에 수유 시간을 글쓰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수유 시간은 낮잠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아이를 안고 수시로 상태를 확인해야 하지만 그래도 한 손은 자유로웠다.
수유 시간 필수품은 원고와 핸드폰, 볼펜 한 자루였다.
한 손으로 원고를 넘기며 고칠 부분을 체크하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핸드폰에 초성이나 단어로 개요만 입력해뒀다. 그렇게 입력만 해뒀다가 아이가 잠들면 바로 글쓰기에 돌입했다. 특히 나는 모유 수유를 했는데 그게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다. 모유 수유는 분유 수유에 비해 준비 시간이 별로 안 걸리고 수유 시간 자체는 오래 걸린다. 그래서 좀 더 오래 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유 시간이 아니었다면 목표한 시간 내에 원고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글은 볼 때마다 손 볼 곳이 있었다.
글은 볼 때 마다 손 볼 곳이 있었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내 생활에, 육아에 힘이 됐다. 잠깐이라도 글쓰기에 골몰하고 나면 다시 아이를 안아올릴 힘이 났다. 글쓰기를 시작하고나서 아이는 항상 내 글쓰기를 중단시키는 주범이었지만 오히려 더 사랑스러워졌다. 남편도 내가 더 즐거워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 시간을 바라도 될까 싶었다. 육아만으로도 정신없는데 이러는 게 맞을까, 내가 육아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갈수록 그런 고민은 줄었다. 나는 내 시간을 가지면서 더 힘을 얻었고 엄마로서 지속가능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내 시간을 찾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