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를 경험하며

마음 수련 일기 - 진짜 일기 주의

by 솜대리




엊그제 오후 갑자기 아랫집에서 올라왔다. 우리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면 아랫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했다.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곧 우리 집으로 입주할 집주인이 1시간 만에 관리사무소 직원과 들이닥쳤고, 우리 집을 꼼꼼히 살피고 갔다. 수리 업체를 같이 한 번 알아보자더니, 우리가 알아보고 연락했더니 정작 자신이 이 알아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업체를 정한 후 일정을 정하는 데도 왈가왈부가 많았다. 우리 집과 아랫집의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업체 연락처를 주지 않고 굳이 자신들이 일정을 중개했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마음대로 일정을 잡았는데 우리가 안 되는 날이었고, 우리 되는 일정에는 업체가 안되고, 다시 업체랑 집주인이 제안한 일정을 내가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하니 짜증을 냈다.


집주인은 짜증을 내면서 우리 집 상태까지 트집을 잡았다. 어제 집을 보니 곰팡이가 많던데 왜 얘기를 안했냐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우리가 전세 들어온 지 1달 만에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그때 집을 사면서 하자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얘기해달라고 했었다. 딱히 하자가 없어서 얘기를 안 했는데, 곰팡이를 트집 잡았다. 욕실과 다용도실, 드레스룸의 곰팡이는 원래 있었다. 집을 보러 왔을 때도 보여줬고 이 아파트가 곰팡이가 많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가 있어서 엄청 관리를 했지만 원래 있던 곰팡이는 전문 청소 업체를 써도 없앨 수 없었고, 우리는 최대한 관리를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꾹 참고 설명을 했지만 집주인은 우리가 잘 못했고 자신은 화가 났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내 목소리에서 분노가 스며 나왔는지 남편이 전화를 뺏어 갔다. 남편이 '역정 난 부분이 있었다면 그 부분은 사과하겠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전화는 끝이 났다. 남편이 그렇게 얘기한 것도 화가 났다.


전화는 끊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앞으로 수리도 해야 하고, 그 후 집주인과 연락도 해야 되고(싫다), 집주인은 수리하는 김에 우리가 이사 올 때부터 원래 있던 드레스룸 천장의 물 샌 자국도 확인하고 수리하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사 오고 한 번도 거기서 물이 새는 걸 본 적 없어서 수리까지 할 일이 생길까 싶지만) 그것도 하기 싫다. 한 달 정도 후면 이사를 갈 거고 집주인은 수리를 다 하고 들어올 텐데. 집주인이 밉다가도 남편 말마따나 괜히 관계가 안 좋아져서 나갈 때 괜히 이것저것 트집 잡을까 봐 그것도 싫다. 잡을 것도 없지만 그 신경을 쓸 게 싫다. 내 집 안 사는 설움이 이런 건가 싶다.


마침 동생이 밥을 먹으러 와서 이 이야기를 하는데, 영업직이라 사람을 많이 만나는 동생은 그냥 넘어가라고 했다.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사람 많다고. 매형처럼 넘어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사과를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은영 박사는 누가 툭 치고 가면 괜히 붙잡아서 일을 키우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고 하루 지난 오늘도 신경을 쓰고 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남이 내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듯 남이 내 정신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라고 했다.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대로는 나는 남의 한 마디에 지배당한 상태다. 분노를 조절해야 한다. 이건 오롯이 내 의지에 따른 일이다. 책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 따르면 분노가 생길 때 관련 호르몬이 내 몸을 휘감았다가 빠져나가는 데는 90초가 걸린다고 한다. 하루가 지나도 부글부글 한다는 건 내가 계속해서 분노하길 선택한 것이다.


흘려보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사고나 조금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손해 보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어쩌다 손해를 조금 볼 수도 있지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경제적/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노력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항상 아등바등하는 편이다. 그 덕분에 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나는 나의 이런 성격을 좋아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겪는 단점까지 포함해서 온전하게. 하지만 이렇게 외부 요인과 엮인 아등바등은 득 될 게 없다. 내가 있을 때 수리 안 하려고 아등바등하고 감정 쏟아 그 시간에 아무것도 못하느니, 그 순간순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사건으로 나를 돌아보게도 되었다. 우리가 이사 갈 집에 누수가 있어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고쳤으면 하고 마음을 쓰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쓰는 와중에 반대 상황에도 동시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집주인이 들어올 예정이고 들어오면서 수리를 할 계획도 하고 있어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남편 왈 그렇게 따지면 끝도 없다고 한다. 이 부분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사건들을 겪는다. 하지만 그 사건에 계속 해서 괴로워할지, 아니면 사건을 흘려보내고 그걸 경험으로 삼을지는 내 선택이다. 나는 후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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