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북적북적한 주말 에버랜드. 푸드코트에 아빠랑 두 돌 조금 지난 아기가 앉아 있다. 아기는 실컷 놀았는지 머리가 부스스하게 풀려 있고, 아빠는 혼자 아기 챙기랴 짐 챙기랴 뭔가 분주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아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배식구로 아기를 데리고 간다. 한 손으로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잡은 채로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아기는 유튜브를 틀어주지 않아도 꽤 잘 앉아있는다. 배가 고팠는지 아빠에게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요구하며 잘도 먹는다. 아빠도 아기를 먹이고 닦이고 하면서도 중간중간 잘 먹는다. 음식이 좀 많은가 싶었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다 먹었다.
아빠는 식탁 위를 싹싹도 치우더니 다시 아기를 데리고 퇴식구로 다녀온다. 돌아와서 다시 남은 쓰레기가 없는지, 놓고 가는 게 없는지 챙기더니 아기를 태우고 다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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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풍경을 봤다면 어쩐지 짠해했을 것 같다. 혼자 아기 키우는 아빠가, 주중에는 일하느라 아기랑 시간을 못 보내서 어느 주말에 마음먹고 에버랜드에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하며. 뭐라도 도와줄 게 없을까 머뭇머뭇 했을 것 같다. (옆에서 남편에게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며 잔소리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어제 우리 집 아이와 남편의 이야기다.
스티커로도 다 가려지지 않은 볼록한 볼을 보라
어제 결혼식이 있어 혼자 외출을 해야 했다. 먼 곳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라 남편이 낮 시간 내내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 이렇게 나가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나갈 때마다 걱정이 된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나는 챙길 생각도 못하고, 아이와 남편 밥을 챙기고 아이 놀아주기에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
외출하는 날이면 아이 남편 반찬을 미리 다 해놓고 담아놓는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호랑이와 사자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읽어주던 동화책에 사자와 호랑이 그림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안 그래도 내일쯤 에버랜드를 갈까 생각했기 때문에 '에버랜드에 갈까?' 했더니 지금 가겠단다. 남편에게 '지금 딸내미가 에버랜드 가겠다는데?' 했더니, '갈까?' 한다. 그러더니 후다닥 준비해서 나가버렸다.
에버랜드에 딱 한 번 아이를 데리고 간 적 있었고, 그때는 평일에 둘이서 데리고 간 건데도 고생스러웠다. 남편이 요령이 있거나 많이 다녀본 사람도 아니고. 보내 놓고도 불안한 마음에, 주차장 자동 결제를 신청하고, 에버랜드 앱 링크를 보내고 (요즘 에버랜드를 이용하려면 앱이 필수더라), 남편이 보겠다고 한 프로그램 시간을 찾아 보냈다. 더 할 게 없나 싶었지만 없었다. 그리고는 괜히 물가에 애를 내놓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개장시간, 입구부터 북적북적 했다고.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남편과 아이는 잘도 다녀왔다. 남편 말에 따르면, 사파리에서 기린을 가까이 보며 둘이 함께 신기해했고, 아이가 코뿔소를 굉장히 좋아했으며, 생전 처음 솜사탕을 먹어 봤고, 점심은 생각보다 많아서 오후에도 계속 배가 불렀다고 했다. 평소 아이는 12시 반에 낮잠을 자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앵무새가 쇼를 하는 게 1시 반에 있어서 그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다행히 버텨줘서 그 쇼를 보고 장렬하게 잠들었다고. 그리고는 차로 집으로 옮길 때도 깨지 않고 푹 자서 남편도 잘 쉬었다고.
엄마가 있었으면 안 사줬을 솜사탕. 솜사탕을 먹어서 아이도 행복했고, 그걸 보는 남편도 행복했다고 ㅎㅎ
감사한 마음으로 후기를 듣는데 남편이 '그런데 가장 신기했던 게 뭔지 알아?' 하며 말을 꺼냈다. 뭐냐고 물으니, 애랑 아빠랑 식당에서 단 둘이 밥을 먹은 풍경이란다. 다들 가족 단위로 와서 북적북적한 가운데 둘이만 부녀 간이었다고. 게다가 딴 집은 다들 유튜브 하나씩 켜놓고 먹는데, 딸내미는 그런 걸 보지도 않고 자기랑 맛있게 싹싹 다 먹었다고.
반쯤은 자랑인 그 얘기를 듣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한부모 가정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면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딸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선뜻 다녀오는 남편을 둔 나 조차도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육아하는 아빠가 아직 많이 드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육아 문화 개선을 위해 남편과 딸내미를 많이 내 보내야겠다. 잘할 수 있지 남편?
+) 육아 평등을 위해서는 폭풍 칭찬과 선 배려는 필수다. 남편은 다음날 (오늘) 자유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