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솜대리 Jul 29. 2018

부엌 정리

내가 좋아하는 순간




우리 집 부엌은 정말 정말 정말 좁다. 가스레인지, 싱크대, 도마 자리를 제외하면 남는 공간은 손이 닿지 않는 ㄱ자 싱크대의 코너 자리밖에 없다. 조리 공간도 조리 공간이지만, 수납공간이 극도로 부족하다.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좁은 부엌 수납 아이디어'는 모조리 활용했다. 벽에 랙과 고리를 걸어 조리 도구 매달기, 찬장 밑에 행주 걸이와 와인잔 랙 걸기 등등. 요리를 많이 하니 불편하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살만했다. 신혼집이라 살림이 많지 않기도 했다.


지금 보이는 곳이 우리 집 조리 공간의 전부다.


그런데 한 3년 반 살고 나니 짐이 조금씩 늘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미역을 사려해도 놓을 곳이 없어서 통 미역을 못 사고, 잘려 나와 작게 포장된 미역을 사야 한다. 간편하긴 하지만 나는 좋은 미역이 먹고 싶다... 결국 아일랜드를 새로 들이기로 결심했다. 아일랜드를 들이자면 거실의 절반을 포기해야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아일랜드의 배송을 기다리며 부엌 정리를 시작했다. 새로운 수납공간이 생기니 전반적인 재구성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부엌의 모든 걸 다 꺼내놓고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워낙 좁은 주방이라 이미 최적화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리를 하고 나니 거실로 유배시킨 다구세트를 다시 부엌으로 들일 수 있었다. 사실 거실에도 둘 곳이 없어 높이가 2미터 가까이 되는 책장 위에 올려두었었다. 맨날 까치발로 아슬아슬하게 쟁반을 꺼내면서, 언젠가는 깨겠구나 싶었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각종 재료를 깔끔하게 수납한 것도 대 만족이었다. 지퍼백 안에 두었던 각종 마른 식재료들을 안 쓰던 반찬통에 넣었다. 빈 반찬통을 수납할 공간을 아끼고, 마른 재료들을 꺼내 쓰기도 편해졌고, 게다가 수납 용기 하나 안 사고 수납을 해냈다! 일석 삼조였다.


깔은 맞지 않지만, 이게 어딘가!


화룡점정은 밥/ 반찬 그릇 뚜껑 정리였다. 그릇 살 때 딸려오긴 했는데 잘 쓰진 않으니 항상 찬장 속에 있었다. 버릴까 하면 가끔 촬영 등에 쓸 일이 있었다. 포개서 찬장 안에 넣어 두었는데 찬장에 손을 넣을 때마다 늘 달그락거렸다. 볼록한 뚜껑을 뒤집어 쌓아놓으니 불안정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에 정리할 때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마지막까지 바닥에 놓여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버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같이 정리되지 않은 미니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계란바구니라고 줬지만 쓰지 않고 있었다. 가만 보니 바구니 사이즈가 사기 뚜껑 더미와 비슷했다. 설마 싶어 뚜껑 사이사이에 뽁뽁이를 끼우고 착착 겹쳐서 바구니에 넣어보았다. 맞춤인 듯 딱 맞았다.



정리를 하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사진을 찍어 엄마한테 자랑했다. 주부 9단이 된 것 같았다. 더 일찍 정리해볼 수도 있었는데, 손 놓고 주방 탓만 한 것 같다. 뭔가 또 더 할 거 없나 레이더가 바짝 섰다. 아 아일랜드 들어오면 수납공간이 남아서 어쩌지 ㅎㅎ


작가의 이전글 책 고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