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가 내게 질문했다. 나도 결혼을 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사람과 지금은 좋아서 결혼하더라도 이 마음이 평생 갈 수 있을까. 1, 2년 연애하다 가도 마음이 바뀌는데,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 감정이 안 바뀔 수 있을까? 갑자기 남편이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이 살랑살랑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하지만 요새는 그런 걱정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살랑거림도 없었지만, 살랑거림으로 흔들리기에는 우리가 그간 쌓아온 신뢰나 맞춰온 합이 너무나도 단단했다. 결혼 생활은 감정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었고, 그래서 내가 걱정했던 방식으로 쉽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준호한테는 좀 설렜다
요즘 나는 육아와 집안일에서 손을 놓았다. 손목과 발목이 안 좋아서 한 달 넘게 병원을 다녔는데 낫지 않아 큰 병원을 가봤더니 문제가 좀 있어서 한 달간 손목과 발목을 아예 안 쓰는 중이다.
그 김에 요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이 독박 육아를 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영어 책을 본다. 남편이 집안일을 할 때 잠시 아이와 입으로 놀아주긴 하지만, 몸 쓸 일이 있으면 바로 남편에게 넘긴다. 아이도 이제 이런 흐름이 익숙해졌는지, 몸으로 놀 일이 있거나 육체적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랑 놀다가도 아빠를 찾는다.
밥 먹은 뒷처리도 아빠 몫
남편은 육아 휴직을 했다. 이젠 아이가 안정적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지만, 육아보다는 스스로 갭이어를 가지기 위해 육아 휴직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 썼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본인이 간절히 원하니 쓰도록 했다.
육아휴직을 한 아들에게 시아버님이 보라고 권한 다큐. 일은 왜 하는가 ㅋㅋ
그걸 두 번씩 보며 노트 정리 중인 남편 ㅋㅋ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옆에서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있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남편은 골골거리면서도 열심히 돈 벌고 있는 내게 고마워한다. (그러리라 생각한다 ㅋㅋ) 나는 내가 아이를 못 보더라도 남편이 잘 보리라는 믿음이 있고, 남편은 자신이 잠시 쉬어가더라도 내가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이런 감사와 신뢰의 감정은 때론 사랑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삶의 제약들은 관계의 안 좋은 점들을 더 부각하기도 하지만, 좋은 점들을 찾아내 주기도 한다. 육아는 우리 관계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우리 둘 간의 직접적인 감정들을 제쳐놓더라도, 남편은 아이가 툭하면 찾는 아빠고 남편에게 나는 아이가 꼭 끌어안고 자는 엄마다.
이만한 비눗방울 장인 만나기도 쉽지 않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결혼 생활은, 결혼 전에 생각했던 결혼 생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그래서 결혼 전에 했던 고민이 지금 와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결혼 전에는 감정이 변하면 어떻게 하지를 걱정하기보단, 다양한 감정을 함께 쌓아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더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