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뉴욕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솜대리 Jul 24. 2022

족저근막염은 내 운명

아등바등은 이제 그만



양쪽 발목 인대와 정강이 뼈가 멍 투성이가 된 지 4달이 넘었다. 멍은 빠질 때가 되었고, 수차례 다친 인대도 다행히 재활 운동의 경과가 좋아 인대 재건술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10분 이상 걸으면 발바닥 쪽이 아팠다. 다리 부상 초기부터 있던 증상인데, 이 증상만 유독 호전되지 않았다. 예정일보다 일찍 병원에 가보니 족저근막염이란다.


발바닥에서 뒷꿈치로 연결되는 부위가 아프다

갑자기 발을 많이 쓰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 바로, 언제 이 병에 걸렸는지 짐작이 갔다. 딱 세 번의 상황 때문이다.


1/2. 부서원들끼리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 동료랑/ 옆 부서 임원이랑 단둘이 얘기를 하게 돼서 얘기하며 쭉 걸었다.  

3. 몇 년째 옷을 안 샀더니 회사에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몇 번 시도한 인터넷 쇼핑은 다 망했고. 딸내미랑 남편을 어디 데려다줬는데 마침 근처에 옷 가게가 있어서 쇼핑을 했다. 옷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발목이 무리한 상태였는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이런 날들... 다리가 그렇게 나갔는데 만보씩 걷다니 ㅠㅠ


1/2번에서 한 얘기들은 중요한 얘기들도 아니었고, 3번에서 옷을 안 사면 옷을 살 시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려는 집착 같은 게 있는데, 위의 상황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그런 집착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집착을 오만데 다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대화(잡담)를 중간에 멈추는 것, 가족에게 쏟을 1시간을 빼는 걸 못해서 족저근막염을 얻었다. 너무나도 나답다.


이렇게 글쓰면서 어제 계곡 갔음 주의...


이런 나의 아등바등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에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ㅋㅋ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고도 내가 남편과 아이 밥을 챙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는 정말 바빠서 애 일어나는 것만 보고 바로 출근해서 애 재울 때 퇴근해서 애 재우고 집에서 다시 일하고를 반복한 데다 주말까지 일했는데, 그 와중에도 밥을 했다. 집에 먹을 게 없으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서 반찬거리를 해두고 출근을 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많지 않은 때에는 서둘러 퇴근해서 저녁을 차린다. 아무리 바쁘지 않은 때라고 해도 매일 칼퇴하는 건 쉽지 않다. 칼퇴를 하려고 회사에서 아등바등 정신없이 일하다가, 회사 밥을 두고 서둘러 집에 가서 밥을 차려서 함께 먹는다. 애 저녁 시간을 맞추려고 후다닥 집에 와서 옷을 던져놓고 해 놓은 걸 꺼내서 먹인다. 미리 먹을 걸 해놓으니 남편이 먹이도록 해도 좋지만, 유독 부엌일에만 거부감이 큰 남편은 애만 먹이고 자기는 대강 먹거나, 둘 다 대충 사 먹으려 한다. 나는 그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심지어 반찬을 사 먹을 수도 있는데!  대체 왜! ㅋㅋ

난 왜 이럴까...


그렇게 해서 아등바등해서 쌓은 스트레스는 다시 다 쌓여서 어디선가는 폭발하게 된다. 족저근막염에 걸리더라도 걸리고. 반면에 아등바등해서 얻는 건 너무 적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딱 필요한 곳에서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건 오히려 내재화되었는데, 선택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건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책 '생각의 탄생'에서 소개된 시스템 1(자연스러운 상태)과 시스템 2(의식적으로 하는 일) 구분에 따르면, 내게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일을 골라내는 건 시스템 2의 영역이라 따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시스템 2를 일상적으로 가동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요런거


하지만 이제는 책임질 일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더 이상 예전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자연스러워서는 안 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나의 시스템을 재편할 때다. 또다시 족저근막염에 걸릴 수는 없다.


자 고고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인터뷰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