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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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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05. 2023

나는 나를 망가뜨릴 권리가 없다

부모 되기


아이에게 아토피가 생긴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몇 개의 작은 두드러기는 그 사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소소한 걱정은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 - 슬픔과 안타까움과 죄책감과 갑갑함 - 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지쳐갔다. 밤이면 유독 심해지는 가려움 때문에 가족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긁으면 더 심해지고 번져서 긁으면 안 된다.) 아이는 내내 잠을 설쳤고, 남편과 나는 교대로 밤을 새웠다. 한 달가량을 매일 같이 2-3시간 겨우 잘까 말까 한 적도 있었다.


살이 파이도록 긁은 걸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 1급 스테로이드를 오래 발라 털도 나고 피부도 아토피 있는 쪽만 하얗다.


어린이집을 보내기도 힘들어졌다. 졸린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길 싫어했고, 억지로 달래서 보내면 잔뜩 긁어 피범벅이 되어 오곤 했다. 너무 잘 제재되어 우울해하거나. 이 영향이 있는 건지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닌 지 2년 만에 어린이집 거부가 왔었다. 거부 증세가 없어진 후에도 아토피가 심하면 못 보냈고. 모든 게 완벽해야 간신히 유지되는 맞벌이 시스템은 무너졌다.

 

덕분에 아침에는 항상 이 상태... 옷을 갈아 입혀도 이렇게 잔다...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남편과 나는 자주 아팠고, 자주 싸웠다. 정말 마음에 바늘 한 땀 들어갈 여유도 없이 숨이 막혔다.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그래서인지 회복 탄력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울컥울컥 났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며칠이 지나서야 간신히 그렇게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그냥 뭐든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나는 나를 망가뜨릴 권리가 있다'라는 말에도 앞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엄마가 된 이상, 다른 사람(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를 망가뜨릴 방법은 없다.


눈물을 참고 참았다가, 혼자 있는 기회에 엉엉 울어 두었다. 한 번으로는 안돼서 두 번을 그렇게 했다. 눈물을 다 내고 나서는, 카페인을 좀 섭취하고 몸을 움직였다. 씩씩하게 일어나서 커피를 타고 그걸 들고 다니면서 환기도 시키고 냉장고 위도 좀 닦는다. 중간중간 먼지가 들어간 커피도 마시고, 아이 간식도 좀 훔쳐 먹는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방법들도 찾아본다.


휴가를 내고, 카페에서 혼자 몇 시간 앉아 있었던 날. 이런 시간이 가끔 꼭 필요하다.


'엄마는 강하다'라고 한다. 하지만 난 강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나를 망가뜨릴 권리가 없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망가지지 않으려고 힘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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