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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16. 2023

기부를 하는 방법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이 있다. 누군가를 돕고 싶으면, (1) 잘하지도 못하는 뜨개질로 신생아용 모자를 만드는 시간에 차라리 내가 잘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 기부하고 (2) 기부를 한다면, 내가 기부할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잘 쓸 업체를 찾아서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보고는 먹먹한 기분이었다. 왜 '좋은 일'에는 이렇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업체 'Give Well'을 통해 정기적으로 기부를 했다.


그러다가 정기적으로 기부금이 빠져나가던 신용카드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다. Give well에서 카드 정보를 업데이트해 달라는 메일도 왔는데, 어쩌다 보니 놓쳤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최근에 아이가 중증 아토피용 생약 주사를 맞았다. 우리 애는 이 주사를 맞기엔 좀 어리고 매달 맞아야 하는데 100만 원이나 했지만, 우리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잠을 잤다. 1급 스테로이드제를 바르고, 히스타민제와 항생제와 먹는 스테로이드제까지 복용해도 내내 가려워서 자기 몸을 때리기까지 하던 아이가 잠을 잤다. 일주일 후 다시 가려움이 시작되긴 했지만, 다만 며칠이라도 아이가 '보통' 아이처럼 자고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조금 더 경과를 봐야겠지만, 이 주사가 잘 듣는다면 반드시 저소득층의 아토피 아이들의 이 주사 접종을 위해 기부하려고 마음먹었다. 아토피는 잔인하다. 간지러움 뿐만 아니다. '긁으면 심해진다'라는 아이 탓을 할 수 있는 특성은, 정말 무섭다. 돈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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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결심하는 나 자신을 보며 다시 '냉정한 이타주의자'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직장 동료에게 이 책과 'Give well' 단체를 소개했었다. 그때 그는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지만, Give well에 올라온 프로젝트들은 내관심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앞에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 '그래도 기왕이면 가장 중요한 과제에, 효율을 따져서 기부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다. 한 번 만원을 들여 팔 천 원의 효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매달 만원을 들여 매달 육천 원의 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효율도 중요하지만, 지속성(기부자의 공감, 느끼는 의미와 보람)도 중요했다. 그렇게 계속 기여하다 보면 자신의 기여가 육천 원이 아닌 팔천 원이 될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는 거고. 


추가로 개인이 각각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기여하려고 하다 보면, 그간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굴될 수도 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도 'Give well'도 무조건 효율만 따지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그 메시지에 너무 빠져서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사회 문제와 연관시키고 기여를 하도록 넛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건 차차 찾아봐야겠다.




* 아래는 Give well 웹사이트(영문), 주로 아프리카기생충/ 말라리아 관련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러 프로젝트가 함께 소개되어 있고, 그중 자기가 원하는 기부처를 고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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