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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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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ug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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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4일 차



Pest control이 다녀갔고, 다행히 빈대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선 기숙사에는 가구가 전혀 없고, 빈대가 있으면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없단다. 그리고 방충망에 구멍들이 발견되었다. 아마 모기일 가능성이 높단다.


하지만 내가 청소기로 걸레받이, 창문틈까지 여러 번 청소한 상태이고, 이렇게 많이 물렸는데 모기를 본 적도 소리를 들은 적도 한 번도 없다는 건 의문이다. 일단 버그 트랩을 설치해 놓고 갔으니 지켜볼 예정이다.


그래도 전문가가 ‘Pretty confident (꽤 자신 있다)’라고 말하고 가서 한결 마음을 놨다.


긴장도 풀리고 너무 지쳐서 이미 늦은 오후지만 잠시 나가기로 했다. 도착한 지 3일 만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었다.



휘트니 미술관에 갔다. 뉴욕의 현대미술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지만 미술관 종료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서둘러 올라갔다.


오기 전 읽은 ‘나의 뉴욕 수업‘ 책에서 저자가 뉴욕의 테마처럼 삼았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만났고,



강과 리틀아일랜드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모두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약간 숨통이 트였다.



첼시마켓을 지나 역 근처에서 패스트푸드 중국 국수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을 먹으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패스트푸드긴 하지만 그래도 3일 만에 처음 오는 식당이었다. 점심 때는 처음으로 밥을 사 먹었는데 몸이 울컥하고 밥을 급하게 받아들여서 마음도 울컥할 뻔했다.



내내 시리얼이나 요거트, 푸드코트 음식만 먹고 있었다. 낯선 곳이고 아무렇게나 밥을 사 먹기에도 부담스러웠고, 집에는 조리도구가 전혀 없어서 (급하게 아마존에서 청소도구부터 샀고 그다음에야 내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오늘 저녁에야 전자레인지나 세제라도 올 참이었다.) 뭘 해 먹을 수도 없었다. 딱히 굉장히 뭘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몸이 바라고 있었나 보다. 굉장히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잘 먹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이제 급한 불은 모두 껐으니, 일을 하더라도 나를 잘 먹이고 얼러가며 잘 충전해 둬야겠다. 그래서 낯선 곳에 떨어진 가족들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이드하고 포용할 수 있다.


오늘은 할 일들을 오후로 살짝 미루고 아침부터 다운타운에 나왔다. 오큘러스센터와 911 메모리얼파크를 쓱 구경하고, 몇 년 전부터 오고 싶었던 펍을 왔다. 아이리쉬 커피와 스카치 에그를 눈앞에 두고 앉았더니 행복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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