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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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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Sep 03. 2023

끝나지 않은 똥파리와의 전쟁_가족들이 보고 싶다.

미국생활 12-13일 차



오늘 집에 들어와 보니 파리가 20마리는 죽어 있었다. 어제 집에 독한 약을 다 쳐서 집에 있던 파리들은 다 죽었고, 창문도 (방충망이 멀쩡해 보이는) 욕실만 조금 열어놓고 다 닫아 뒀는데 파리 시체 투성이었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파리 사체를 다 치우고 청소를 하고 돌아서니 다시 몇 마리가 죽어 있었다.


이러지 말자


이사를 가야 하나, 아이가 와도 이러면 어쩌나, 절망적인 마음에 한국에서 도착한 선편 택배도 박스만 내다 버리고 그대로 쌓아두었다.


갑갑한 마음에 학교 캠퍼스에 나가 앉았다. 한국 아침시간이 되어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우선은 아빠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와는 매일 통화를 하고 있다. 30분을 넘게 할머니와 파리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남편과 딸내미, 엄마까지.


가족들과 전화를 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 기운이 났다. 가족들과 같이 고민하며 조금 더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루는 창문을 완전히 다 닫고 지내볼 예정이고, 하수구 구멍은 다 물주머니로 막아뒀고, 기숙사에는 지하의 쓰레기 장을 청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요 며칠 그쪽에 부쩍 파리가 많다. 우리 집은 1층이라 거기서 올라올 수도 있을 것 같다. )


저 옆 구멍도 테이프로 막았다. 모든 구멍을 다시 보자

가족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아직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매일 통화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다. 나는 (놀랍게도 실은) 꽤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가족들이 없었으면 못 견디게 힘들었을 것 같다.


동시에 얼른 가족들이 보고 싶다. 남편과 딸도 빨리 왔으면 좋겠고, 다른 가족들도 놀러 오면 좋겠다.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에 가도 ‘아 여기 아빠 오면 좋아할텐데’ 싶고


생각해 보면 어제부로 딸내미와 떨어져 있는 최장 기간을 갱신했다. (출장으로 11일 간 떨어져 있던 적이 있다.)


딸내미가 많이 찡얼거린다고 한다. 이사다 미국행이다 환경이 계속 바뀌고 엄마도 없으니 그럴 거다. 남편한테 밤낮없이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한단다. 남편은 자기를 통제하려고 한다고 화를 냈다. 남편이 받아주는 응석은 다리 아프다고 다리 주물러 달라고 할 때뿐이니 그걸 이용하는 거라고.


그게 아니다. 딸내미는 불안해서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고, 먹히는 방법으로 응석을 부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힘든 남편에게는 들리지 않을 얘기다. 아무리 양가에서 번갈아 가며 같이 지내준다고 해도 이사다 육아다 회사일이다 힘들 거다.


내가 있었음 남편을 토닥이며 어디로 보내버리고, 딸내미를 안고 어르고 놀아주며 기분을 풀어주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


내가 하는 육아라곤 매일 매일 이렇게 화상통화 하는 것 뿐


남편도 보고 싶다. 바퀴벌레 사체들을 봤을 때도 바닥을 닦아도 닦아도 더러웠을 때도 똥파리가 창궐했을 때도 남편이 보고 싶었다. ㅋㅋ (내가 이렇게 의존적인 여성이었다니 ㅋㅋ)


그래서 남편에게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도 내가 보고 싶단다. 내가 미국에 온 후 시도 때도 없이 식겁하고 급발진해서, 남편이 약간 질리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의외였다. 왜냐고 물으니, 흑백인 자기 삶이 내가 있으면 총천연색이 된단다. 맞는 말이다. ㅎㅎ 내가 옆에서 가만있지를 않으니.


이케아 조립은 했지롱


진짜 가족들이 그립다.



여기 (센트럴파크) 도 딸내미가 오면 잘 뛰어놀텐데. 이젠 어디 가도 이런 생각밖에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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