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14일 차
방충망이 있든 없든 모든 창문을 하루동안 닫아두고 하수구까지 막고 났더니 집 안에 벌레가 없다. 여기 와서 2주 간을 매일 각종 벌레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벌레가 없으니 오히려 낯설다. 어쨌든 어떻게 하면 벌레에 시달리지 않을지는 알았으니 일단 한숨 놓았다.
그리고 집 청소를 했다. 벌레 약을 친 게 아무래도 찝찝해서다. 약을 치고 만 하루가 지나 집에 들어온 벌레들도 헤롱거렸다. 꽤 독해 보이는데, 아이가 오기 전에 약 흔적을 최대한 없애고 싶었다.
바닥 청소와 이불/ 매트리스 빨래 및 설거지는 이미 했고, 오늘은 자잘한 것들을 처리했다. 문과 창문 손잡이, 스위치 등 손 닿는 곳들을 모두 닦았다. 밥솥 내솥은 이미 설거지를 했지만 그 안 쪽도 노출되어 있던 게 마음에 걸려 싹싹 닦았다.
바깥에 나와있던 옷들을 모두 빨았다. 시험 삼아 욕조에서 직접 빨아봤다. 옷이 더러운 게 아니고 약만 씻어내는 가벼운 빨래였고, 어차피 아토피가 심한 아이 옷은 공용 세탁실을 쓰지 않고 손빨래를 할 셈이어서 미리 시도해 봤다.
다시는 안 할 거다. 이렇게 옷 여러 벌을 한 번에 손 빨래 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힘들었다. 여러 번 헹구었지만 헹궈지는지도 모르겠고 짜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아이 오기 전에 여러 가지를 미리 해본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었던 한 시간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ㅋㅋㅋ
벌레들이 창궐하면서, 늦게 도착한 선편 택배와 구매품들은 최소한으로 풀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원하게 정리하고 있다. 짐에서 컵과 다른 집기들도 꺼냈고, 브리타 정수기 택배도 뜯어서 설치했다. 이제 물도 페트병 그대로 마시는 게 아니라 컵에 따라 마시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놋물 대신 브리타 정수물로 야채도 씻고 밥도 할 수 있다 ㅎㅎ
한국이었으면 남편만 불러댔을 내가 여기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서 남편은 깨달음이 있었단다.
‘닥치면 다 한다.‘
닥치면 다 하긴 하는데, 문제는 웬만하면 피해 가고 싶고 그 문제들을 혼자 맞닥트리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는 새 집 위주로 살고, 청소/정리/차분함 능력치가 높은 남편 옆에 꼭 붙어 살 셈이다.
남편에게 괜히 ‘나보다 꼭 3살 더 살아야 해!’라고 했더니(남편은 나보다 3살이 많다.) 남편은 ‘그러려고 매일 달리기 하잖아!’라고 받아친다. 그래 이런 재미로 산다.
+) 벌레 문제로 잊고 있었던 납 페인트 문제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납 페인트 사용 금지 규정이 생기기 전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많은 뉴욕주는, 초등학생 12명 중 1명이 납 수치가 위험 수위란다. (어린아이들 발달에 납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분진을 조심하라는데 120년 된 우리 건물에서 3개월 간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한단다. 우리 집은 1층이고 엘리베이터 입구와 50센티 떨어져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진짜 나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구나 싶으면서도 (아이가 생기고 걱정이 엄청 늘었다), 벌레 문제는 내 안에서 정리가 되어가나 보다 싶다.
걱정은 되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리고 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겠지. 이렇게 위안하고 이제 슬슬 학교 준비에 에너지를 쏟아보려 한다. 내일모레 개강이다! 두구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