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장 체험

미국생활 28일 차

by 솜대리



미국에서 가족 첫 렌트, 첫 외곽 나들이, 첫 농장 체험을 했다.


전날 밤 변기가 막혔던 게 역류하는 바람에 아침에 살짝 패닉이 되었지만, 렌터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픽업 시간을 늦추고 급하게 챙겨서 출발시간은 예상보다 30분만 늦었다. 그 정신없는데 잘 따라와 준 아이에게 감사를 표한다 ㅠㅠ 미국 도로 시스템도 낯선데 맨해튼 도심을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금방 외곽으로 빠졌다.


외곽으로 빠지니 마음이 확 트였다. 넓은 도로와 쌩쌩 달리는 차들과 도로 양 옆으로 푸르른 풍경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맨해튼의 높은 건물들과 거리마다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답답했나 보다. 2시간 드라이브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넓다 넓어


농장은 진짜 넓었다.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에 차가 40대 정도 서있길래 '와 복잡하겠다'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농장이 하도 넓어서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았다. 내 사고방식이 코리안이었다. 용인 처인구 같은데 위치한 체험형 농장들의 수십 배는 되는 크기였다.


여긴 입구일 뿐


나는 사과 따기 체험과 곁들여 파는 식음료 정도 예상했는데 놀거리도 많았다. 작물도 포도, 토마토, 줄기콩, 스쿼시 등 다양한 걸 따갈 수 있었고, 트랙터도 탈 수 있고, 동물들도 있었다. 나무로 만든 집이나 미끄럼틀 들도 있었는데 아이가 거길 진짜 좋아해서 주로 거기서 놀았다. 3시간 정도 놀 줄 알았는데 문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6시간 여를 놀다 왔다.


포도도 따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미세 먼지도 구름도 없이 쨍쨍했다. 대충 찍어도 아름답게 보이는 날씨였고,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쇼핑몰도 아닌데 올인원이라 이거 하다 지겨우면 저거하고 저거 하다 지겨우면 또 다른 걸 했다. 아이 따라다니느라 남편과 나는 혼이 쏙 빠졌고, 나는 심지어 의자에 앉아서 졸 뻔했는데 그래도 우리도 즐거웠다. 남편과 계속 좋다, 좋다를 반복했다.


동물도 보고


남편은 기억도 못할 텐데 여러 사과 품종을 다 먹어보겠다고 아이에게 사과밭을 가자고 졸랐고, 아직 시고 맛없는 비싼 포도를 잔뜩 따왔다. 아이는 끊임없이 나무집 속에서 공룡 요리사 놀이를 했고, 염소한테 먹이를 주겠다며 건초 껍질을 벗겼다. 나는 그냥 따라다니며 보는 것만 해도 좋았다.

아이는 한국과 달리 먹이 주기 체험이 없어서 당황하다가, 이내 염소가 먹다 흘린 건초를 주려고 시도했다. 염소는 사람 손에 있는 걸 잘 먹지 않았는데, 아이는 부드러우면 먹을까 싶었던지 건초 껍질을 까댔다. 나는 그게 까지는지도 몰랐는데 엄청 잘 까더라. 염소는 하나도 안 먹었지만.



미국은 몇 번 와봤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는 건 처음이라 나도 가족 나들이를 하면 느끼는 바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진짜 미국 사람들은 우리랑 위생 관념이 다른 것 같다. 어떤 아이가 사과를 먹으며 걷다가 넘어졌는데, 사과가 바닥에 몇 바퀴를 굴렀는데 엄마가 주워서 '안 부서졌네' 하고 아이 손에 그대로 쥐어줬다. 분명 잔디 바닥에 굴렀는데. 나라면 절대 못 줬을 것 같은데, 그 엄마는 사과에 붙은 걸 터는 시늉도 안 했다. 남편과 경악을 하며 쳐다봤다.


염소가 있는 곳에서는 만 2살쯤 돼 보이는 어떤 아이가 자꾸 염소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는데 (남편이 보았단다.) 보호자는 쳐다만 보고 있었다. 염소도 싫어하고 더럽기도 더러울 텐데 ㅠㅠ


밥 먹을 때도 애플 도넛과 애플 사이다의 달콤한 냄새가 나니까 벌이 자꾸 꼬였는데, 벌을 쫓으려 애쓰는 건 우리뿐이었다. 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도 그냥 쿨했다.


애플 도넛과 사이다를 파는 가게 안, 생각보다 도넛 맛있었다!


다들 쿨한데 남편과 나만 식겁하니 우리가 이상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는 사람들이 다들 손도 안 씻고 밥을 먹는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다가도 그냥 나와서 제공된 피자를 맨 손으로 먹고, 양치는 당연히 안 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양치를 안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만세를 불렀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태고부터 존재하던 바퀴벌레조차 자리를 잘 못 잡나 보다.


아이는 벌에 한참 쫓길 때는 '여긴 재밌지만 다시는 오지 말자'라고 했다가, 벌이 조금 지나가고 나니 '다음에는 달콤한 걸 시키지 말자. 아빠가 사달라고 해도 사주면 안 돼'라고 했다. 문 닫을 즈음이 되니 자기도 힘든지 더 놀겠다고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 나왔다.


우리는 사과 6알과 포도 한 박스를 들고 돌아왔다. 무사히 렌터카를 반납하고는 남편이 '첫나들이 무사히 마친 기념 하이파이브!'를 외쳐서 다들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빠가 한 알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해서 잔뜩 따(사)왔는데, 맛이 없다… 아직 시다..


돌아와서는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한참을 울고 (사과를 3알이나 통째로 먹더니 이빨이 아프다고 했었다. 그 탓인 것 같다.) 화장실을 뚫어야 하는데 뚫어뻥을 못 사서 한참을 헤맸고, 내일 어린이집에 보낼 이불 빨래를 해야했는데 세탁실 이용에 문제가 있어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다. 결국 이런 저런 일을 하느라 내일까지인 숙제는 하나도 못했다. 메신저를 보니 과 동기들은 오늘부터 시작된 NYC Climate Week에 참석하고 고무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 힘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하루였다. 다음 주말에도 놀러가야지.


아이들 놀이 공간이 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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