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났고, 남편과 아이가 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었다. 내 브런치를 본 분들이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이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패닉의 연속이었다. 학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어제오늘 부쩍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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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다음 주부터 남편과 정기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어제 갑자기 뉴욕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뉴욕 관련 콘텐츠가 나왔는데, 전혀 다른 도시 얘기 같았단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말마다 열심히 다니긴 했어도 항상 아이 위주였고, 남편은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맨해튼을 누비긴 하지만 관광의 시선은 아니었다. 남편도 뉴욕에 처음 온 건데. 오기 전에는 남편과 데이트 많이 하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나는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고 남편은 정신이 없어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단다. ㅎㅎ
2. 학교는 어느 정도 세팅이 되었다. 아직 뻘쭘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볼 동기들도 생겼고, 느슨하지만 스터디 모임도 한다. 어제는 도서관을 가다가 동기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서서 별스럽지 않은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이제 난 진짜 여기 소속되었구나 싶었다.
3. 딸내미도 열심히 적응 중이다. 어린이집은 이제 잘 가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내내 걱정이었다. 말로 노는 아이인데,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싶었다. 플레이 데이트를 좀 하면서 언어가 달라도 어울려 노는 방법을 스스로 익히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수업 때문에 시간이 좀처럼 안 났고, 남편은 그런 걸 어려워했다. 그런데 우연히 학교 근처 한 놀이터로 딸내미 반 친구들이 자주 모이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는 하원하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언어가 안 통하니 아이는 잘 어울리지 못했단다. 딸내미가 다른 여자 아이들의 손을 잡았는데, 자기들끼리만 놀았단다. 얘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아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와 함께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좋은 시작이 될 거다!
4. 남편은 달리기 목표가 생겼다. 남편은 한국에서도 매일 10km 정도 씩 뛰었고, 여기서는 20km까지 그 거리를 늘리고 있다. 11월에는 프린스턴에서 하프 마라톤을 뛰고 한국에 가면 풀 마라톤에 도전하겠단다. 오늘 아침에는 달리기 속도도 더 높이고 싶다고 얘기해 왔다. 남편은 작년에 아이 아토피가 심해졌을 때부터 내내 기운이 없어했는데, 새로운 목표를 얘기해 오니 기뻤다. 뉴욕 구경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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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주에 한 번 기운이 완전히 빠졌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워킹맘일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정신없는데, 모든 건 새로워서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한국에서는 남편과 같이 해나갔지만, 여기서는 내가 조금 더 챙길 게 많은 느낌이다. 남편의 기분도 썩 좋지 않았고, 뭘 해도 하나 잘 되는 게 없는 느낌이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도 수업 따라가기도 버겁고, 육아나 집안일에 신경 쓰면 남편은 고마워하기보다 걱정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버티다 버티다 기운이 쭉 빠졌었는데, 수영 한 번 가고 와인 한 병 사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나니, 어제오늘은 내내 적응과 해결의 실마리들이 보였다. 아직 헤쳐나갈 문제는 아주 많지만, 이제는 잡은 실마리들을 풀어나가는 단계인 것 같다.
남편 보고 있나? 우리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