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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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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Oct 17. 2023

뉴욕은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미국생활 55일 차



딸내미 Pre-K 친구들은 대부분 형제자매가 있다. 18명 중 14명이 2남매다. 우리 말고 다른 외동 가정도 중국계고, 3 남매를 키우는 집도 많다. 여기서 애 키우기도 한국 못지않게 힘들다. 나라가 크니 조부모들도 멀리 사는 경우가 많아 조부모의 도움을 바라기 어렵고, 인건비가 제일 비싼 나라답게 도우미는 비싸다. 보통은 맞벌이라도 부모 한 명이 커리어를 반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딸내미 친구 중 한 명은 엄마는 종합 병원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의사고, 아빠는 변호사인데 아빠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도우미를 풀타임으로 고용하긴 부담스러워 반일만 고용한다고 한다. ㄷㄷ) 육아 휴직은 쓰기 어렵다. 육아 휴직 말을 꺼내면 그날로 잘릴 수도 있단다. 변호사 남편에게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고 미국에 왔다고 하니 굉장히 부러워했다.


그렇게 힘든데 왜 둘을 낳을까. 남편과 내가 몇 번이나 이 주제를 두고 얘기했는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둘이 너무 당연해서였다. 모두가 둘은 낳으니,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딸내미 하나 데리고 살던 우리도 여기 오니 왠지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리고 여기는 어딜 가든 아이가 환영받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어쩐지 주눅이 든다. 노키즈존에 눈치 없이 들어가는 엄마가 될까 봐 신경 쓰이고, '어린이 대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는 이상 아이는 배제되어 있는 장소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여기는 반대다. '어른 대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 아이를 고려하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여는 음악회에 갔을 때도 아이를 받아 주었고, 도서관에서는 거의 매일 아이들 대상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공원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책이 구비되어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리틀 아일랜드를 갔다. 작은 공원이고, 주거지와는 멀어서 그런지 유독 아이들이 적었는데, 거기도 훌라후프와 줄넘기, 젠가가 있었다. 같이 간 딸내미는 거기서 신나게 놀았는데, 아이들이 적은 공원이라 그런지 어른들이 유독 딸내미를 귀여워했다. 딸내미가 나무 패널 틈에 종이 장난감을 떨어트리자 어떤 여자분은 긴 막대를 구해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 장난감을 꺼내주려고 했고, 작은 무대 위에서 딸내미가 춤을 추자 주변에서 휘파람 불고 박수를 쳐댔다.

오른쪽에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분의 표정을 보라 ㅎㅎ


토요일에는 컬럼비아 라몬트지구관측소에서 오픈하우스가 있었는데, 나는 지도 교수님도 뵙고 배우고 있는 기후 모델들 관련한 걸 보러 갔던 건데 나보다 아이가 더 즐기고 왔다. 공지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은 전혀 없었는데, 가보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아이들이 색칠 놀이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었다. 분명히 비도 많이 오고 추웠는데, 아이에게 그래도 뭐가 제일 재밌었냐 물어보니 다 재밌었다고 답했다.


허드슨 강에 사는 물고기들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세션도 있었다. 뽑고 끼우는 걸 딸내미가 좋아했다 ㅎㅎ


일요일에는 동네 학교에서 하는 축제를 갔는데, 당연하게 길을 가로막고는 온갖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에어바운스, 페이스페인팅, 액세서리 만들기, 마술쇼, 셀프 네일 아트 사이에서 아이는 쉼 없이 놀았다. 우리 회사에서 자랑하는 어린이날 행사보다 훨씬 실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 대상이 아닌 프로그램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데, 아이 대상인 프로그램은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느낌이었다.


바닥에 분필로 그림그리기도 하고 ㅎㅎ


몇 번 썼지만 나조차도, 아이 덕분에 뉴욕을 훨씬 즐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다. 차도 없고, 지하철 같은 인프라가 노후되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긴 쉽지 않다. 물가도 비싸고. 우리나라는 유아 교육이 거의 무료고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매일매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떤 느낌을 받느냐 인 것 같다. 짧은 경험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 여기는 적어도 아이를 데리고 당당하게 다닐 수가 있다. 그게 똑같이 육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들 아이를 둘 씩 낳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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