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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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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Oct 21. 2023

대학원 첫 시험

미국생활 57일 차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다행히 시험을 치는 과목은 한 과목. 하지만 시험 전 주부터 적잖이 긴장했다. 중간고사라니. 그런 단어 자체를 잊고 살았었다. 대체 시험은 어떻게 준비했었단 말인가.


게다가 시험 보는 과목은 국제 정책 대학원의 환경 정책 수업이었다. 잔뜩 외워서 주절주절해야 하는 시험이라 더 긴장했다. 경영 전공이었던 나는 학부 시험 때 긴 답안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었고, 회사 보고서도 항상 요점만 간단히 써 버릇해왔다. 게다가 이번에는 영어로 써야 한다니! 아찔했다.


일주일도 전부터 약간 긴장 상태였다. 학점이야 못 받아도 그만인데, 혹시 너무 못 받아서 졸업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졸업을 하려면 학점 평균이 3.0은 되어야 하는데, 학부 때 내 성적을 떠올려보면 쉽지 않은 커트라인이었다.


덕분에 텅텅 빈 도서관도 봤다. 비오는 주말 아침 8시, 낮에는 가족들이랑 놀러가려고 잠시 도서관을 갔더니 텅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중간고사 준비가 괜찮았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ㅎㅎ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잊고 살았던 학생으로서의 내 모습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웃겼다. 시험 10일 전 쯤 부터 중간고사를 준비했는데, 나는 그 기간 동안 그렇게 다른 과제들에 열심일 수 없었다. ㅋㅋ 수업을 100% 따라가지 못하니 시험 준비는 일찍 시작했는데, 시험공부는 하기가 싫었다. 자꾸 다른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할 일들을 해놓고 남는 시간에 짬짬이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시험 3일 전 쯤 되니 시험 다음날까지 해야 할 과제들은 다 해버려서, 그때부턴 중간고사 준비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또 다른 나의 특성이 발휘되었다. 적당주의. 나는 시험 공부 할 때 항상 적당주의가 있다. 이 정도 하면 됐다 싶으면 더 이상 파고들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그래서 나는 항상 적당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결코 최상위권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대략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점수 조금 더 따자고 더 들여다보고 소소한 부분까지 억지로 외우는 건 여전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틀 전 쯤 되니 85%쯤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턴 마음을 놨다. ㅎㅎ


열심히 지구과학 숙제도 하고


시험은 화요일 오후였다. 그래도 당일 아침에는 다시 좀 들여다보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사실 아침엔 잠시 집 앞 새로 연 카페에 갔다. 우리가 첫 손님이 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가서 공부도 좀 했던가…
음 생각해보니 점심 때는 남편이 햄버거 먹고 싶대서 파이브 가이즈를 갔네? ㅋㅋ

4가지 문제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다행히 쓸만한 게 하나 있었다. 해양과 강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관을 추가 설립하고 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도움이 되냐는 문제였다. Liberal institutionist 관점에서 환경 정책을 수립하는데 대해 찬반을 쓰면 되는 것 같아, 수업에서 배웠던 사례들을 활용해 답을 썼다. 시간이 1시간 정도 주어졌는데, 시간이 남을 줄 알았는데  모자랐다. 왜 내 손은 더 빨리 움직일 수 없는 걸까 한탄하며 마구잡이로 날려서 쓰고 나왔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해양에 대해서만 썼다. 강에 대해서도 쓸 수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다 헝)


시험장 앞에서 공부는 안하고 사진 찍는 중 ㅋㅋ


시험을 끝내고 나니 후련했다. 시험 다 본 느낌도 오랜만이었다. 명색이 대학원 첫 시험이 끝난 날인데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ㅎㅎ 미리 친구 두 명을 집에 초대했었다. 훠궈 파티! 재료만 늘어놓으면 되니 준비할 것도 없어서 시험 끝난 날 간단히 즐기기 딱이었다.


각각은 아는 사이지만 셋이 모인 건 처음이었는데 재밌었다. 신기한 게, 회사에서 95년 생과 얘기하면 굉장히 귀엽고 후배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서 만난 00(!!) 년생들한테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아무래도 같은 역경을 헤쳐나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ㅎㅎ 프랑스인 친구한테는 대학교 다닐 때 처음 미국 넘어와서 적응하는데 얼마나 걸렸냐 (1학기는 걸렸단다 ㅎㅎ), 미국인 친구한테는 미국 국내 여행지를 추천받고 놀았다. 미국인 친구가 룸메와 안 맞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예전에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받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같이 사는 사람과 안 맞으면 힘들 텐데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친구들 배웅하는 길. 다들 신남 ㅋㅋ


중간고사까지 보고 나니, 진짜 이제 학생이 된 것 같다. 12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은 참 좋다. 과제에 허덕이기는 하지만, 뭔가 새로 채워 넣는 기분도 좋고 옛날 기억도 나고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나도 20대 중반으로 돌아간 착각도 들고 그렇다. (나의 계좌는 녹아나고 있지만) 대학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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