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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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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Oct 31. 2023

뉴요커(?)의 교외생활 체험

미국생활 68-70일 차



지난 주말 2박 3일 간 업스테이트 뉴욕에 사는 회사 동기 집에 다녀왔다. 동기는 남편과 사내 커플인데, 남편이 주재를 나와서 1년 반 째 이곳에 거주 중이다. 고맙게도 먼저 2박 3일 놀러 오라고 권해주어서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뉴욕은 아직 단풍이 드는 중인데 여긴 300키로 북쪽인데도 단풍이 끝물이었다. 예뻐라.


기왕 가는 김에 나와 아이 학교도 하루 쉬고 금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친구 집에는 저녁에 가기로 했지만, 가는 길에 Seven lake's drive (7개 호수 근처 드라이브길)를 들렀다. 남편이 본 여행 책에서 단풍이 절경이라고 했단다. 렌트를 해서라도 꼭 가라고. 사실 풍경 자체만 놓고 보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단풍도 예쁘고 잔잔한 호숫가에 선명히 반사되는 풍경이 예쁘긴 했지만, 뉴욕에 놀러 와서 굳이 렌트해 나올 만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예쁘긴 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굉장히 한산했다는 점이다. 평일이긴 해도 단풍 시즌이고 금요일인데도 사람이 없었다. 간간히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드물게 스쳐가는 정도였다. 역시 대륙의 힘인 건가. 한국이었으면 미어터져서 사람 반 단풍 반이었을 것 같은데, 여기는 보이는 가장 좋은 장소들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줄서서 사진찍었을 스팟에 우리 가족만 있었다


아이는 처음에 바닥에서 지렁이를 발견한 후에 지렁이를 밟아 죽일까 봐 돌멩이 위만 깡충깡충 뛰어다녔고, 그 와중에 마른 단풍잎을 던지며 놀았다. 한국이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일까 봐 전전긍긍했을 텐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싸 온 점심도 호숫가 엄청 멋진 바위를 하나 점유하고 그 위에서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진짜 이 나라는 스케일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확실히 있다. 호숫가에서 한참을 놀다가 마지막엔 근처 전망대에 올랐는데, 그 스케일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360도를 다 둘러봐도 지평선이었다. 이렇게 넓은 자연이라니.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이후엔 드디어 친구 집으로 향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친구집은 우리가 미국 교외 주택하면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주택이었다. 집 앞에 큰 나무가 하나 있고, 뒷마당이 있고, 지하실과 차고와 2층이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맨해튼 120년 된 건물의 투룸에서 사는 우리는 입이 떡 벌어졌다. 사실 나는 미국 교외 주택을 안 와본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좁은 집에서 살다가 같은 주에 사는 동기의 집에 왔는데 환경이 다르니 그 다름이 꽤 크게 느껴졌다.


뒷마당도 이렇게 크다


2박 3일 간 우리는 먹고 놀았다. 음식을 잘하는 동기는 도착한 날 저녁부터 갈비찜에 모엣샹동 샴페인을 대접했다. 다음날 저녁은 철판 요릿집에 가서 불쇼와 함께 철판 요리를 먹었고, 이틀 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동기에게는 우리 딸내미 보다 한 살 많은 아들이 있다.) 어른들끼리 위스키를 마셨다. 동기는 직접 만든 과카몰리에 부라타 치즈 샐러드 등을 안주로 내놓았다. 30평 대 집에서 보통의 주방을 가진 워킹맘으로 살다가, 큰 주택의 넓은 주방을 가진 주부가 된 동기는 요리사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 갈비찜이라니! ㅠㅠ


먹고 논 우리도 좋았지만, 딸내미는 더 좋았다. 집이 크니 장난감이나 책이 거의 무한으로 있었다. 딸내미는 동기 아들과 지하실에 장난감 방에 가서 놀다가, 2층 책방에서 책을 보다가, 1층에서 과학 실험놀이나 보드게임을 하다가, 뒷마당에서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에어바운스/ 트램펄린을 하고 놀았다. 트램펄린이야 한국 가정에도 요샌 많다고 하지만, 여기 트램펄린은 한국 같은 일이인용이 아니라 아이 열명이 들어가도 뛰어놀 수 있는 거대 트램펄린이었다. 저녁에는 불을 피워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었고, 망원경으로 달도 봤다. 도시에서는 달을 보려면 아파트를 피해 한참 가야 하는데.


사실 달 구경은 나랑 남편이 더 신났다


얼마나 좋았던지, 아이는 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 걷어봐, 아침이잖아? 우리가 어떻게 아침까지 잤지?'라고 한탄했다. 집에 와서는 우리가 '아이고 역시 집이 최고다, 그렇지?' 하니까, '아니야, XX 오빠네가 최고야' 란다. 아이가 좋아하니 우리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 아들네 학교에서 하는 할로윈 행사도 참여했다. 딸내미가 사탕을 어찌나 꼼꼼히 수거하던지 ㅋㅋ

그 외에도 참 좋은 게 많았다. 맨해튼에서는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차가 있으니 역시 편했다. 교외라 대형 할인 매장도 많아 물건도 싸게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 차가 없는 저소득층은 오히려 기동성이 없어서 더 비싸게 물건을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그 저소득층이 우리였다. ㅋㅋ


고기 가격도 내가 가는 마트보다 25% 정도 쌌다…


생활도 편했다. 일회용품 사용도 많았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편했다. 음식이든 (우리나라 기준) 재활용품이든 분리 없이 쓰레기통에 다 쓸어 담으니 뒷 처리랄게 별로 없었다. 재활용품을 헹굴 필요도 없고. 이건 맨해튼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큰 집에서 여럿이 생활하다 보니 그런 점이 더 눈에 띄었다. 수억 미국인이 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날 만날 열심히 재활용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안타까우면서도 편한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남편이나 나나 맨해튼은 서울이랑 비슷하단 느낌이라서, 딱히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친구집에서 며칠 지내보니 생활이 여유롭고 편해서 나도 미국 교외에서 이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집 관리에 엄청 에너지가 들 것 같았다. 정원에서는 끊임없이 잔디가 자라고 잡초가 나고, 낙엽이 쌓였다. 벌집도 자주 생긴다고 했고, 30년이 넘은 집이라 가끔 수리할 일이 생기는데 수리공을 부르는 것만 해도 한 세월이었다. 인건비가 비싸니 한국처럼 청소 서비스를 쓰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청소가 어려운 건식 화장실만 세 개고.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든다. 집세는 싼 편이라 월 3700불 정도 한단다. 우리가 사는 햇빛 안 들고 환기 안 되는 1층 투룸이 월 2500불인걸 생각하면, 이 동네가 싸긴 싸다. 하지만 관리비, 차량 유지비, 아이 사교육비 등 이것저것 계산해 보면 최소한으로 살아도 월 천만 원은 나갈 것 같고, 일상에서 쪼들리는 감 없이 적당히 하고픈 걸 하며 지내려면 월 천 오백만 원은 필요할 것 같았다. 과연 우리가 둘이 열심히 벌어도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돈을 감당하며 이 생활을 선택한다면, 그건 아이의 영향이 클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정말 부럽다. 이 정도 환경에서 산다면 정말 아이를 둘셋 낳을 생각이 들 것 같다. 집이 키즈 카페, 식당, 놀이터 등등 많은 걸 대체하니 분위기도 더 가족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고.


눈 뜨고 바로 이 거대 트램폴린에서 놀 수 있다!


오래간만에 잘 쉬고 친구와 수다도 많이 떨기도 했지만, 동시에 교외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편도 많은 걸 느낀 것 같고 덕분에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더 많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맨날 나와 결혼한다던 딸아이가 친구 아들과 결혼한다고 마음을 돌린 것 빼고는 다 좋았던 삼일이었다. ㅋㅋㅋ


뭐하니 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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