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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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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04. 2023

딸내미의 미국 적응

미국생활 75일 차



미국으로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딸내미의 적응이었다. 이제 막 만 4살이 된 딸내미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데, 아무리 어린아이들은 금방 적응한다고 해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집에서 영어를 섞어 쓰기도 했지만 딸내미가 조금 지나니 바로 '영어로 말하지 마, 미국에서 배우면 되지' 하고 제재를 가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도 억지로 하기가 힘들어서 말았다. 결국 딸내미는 영어라고는 헬로 정도만 아는 채로 미국 Pre-K에 들어왔다. 그러고 약 50일이 지났다. 아이들은 잘 적응한다고 하지만 진짜 딸내미의 적응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오늘은 갑자기 미국 어린이집에 계속 다니고 싶단다. 한국 어린이집 보다 미국 어린이집이 더 재밌다고.


처음 Pre-K에 가서는 일주일 정도 안 간다고 울다가, 일주일 조금 지나니 학교에서 하는 단어들을 몇 마디 씩 집에서 했고, 이주일 지나서는 씩씩하게 들어갔다. 삼주 째 정도부터는 어린이집에 딸내미를 좋아하는 친구도 생겼다. 그즈음부터는 어린이집 하원 후에 놀이터 고정 멤버가 생겨서 아빠가 보는 아래서 어린이집 친구들과 조금 더 어울리는 연습도 시작했고. 그러고 7주 정도 지난 지금은 한국 어린이집 보다 여기가 좋단다.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미국이 좋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미국에서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도 잦고 놀러도 많이 다녀서였다. 어린이집이 좋다니. 부모로서는 이렇게 안심될 수가 없다.


종종 공원 산책을 가는데 그것도 좋아한다. 한국에선 산책 가면 어린이집 한바퀴 도는 정도였는데 ㅎㅎ


그리고 신기한 건, 벌써 언어가 섞이기 시작한다. 어제오늘은 갑자기 딸내미의 문장 속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영어 노래는 5주쯤 되었을 때부터 열심히 불렀는데, 말하면서 영어가 섞여 나와서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인 건 어제오늘 일이다. 아이들은 진짜 빠르다. 그리고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런지 미국에서 배운 단어들은 완전 현지인 발음이다. 신기하다.


참관 수업 때 봤는데, 선생님이 진짜 노래를 잘한다 ㅎㅎ 아이들이 귀 쫑긋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선생님 운도 좋있디.


크는 것도 무럭무럭 크고 있다. 이제는 정말 상황판단이 가능한 어린이다. 오늘 아침에는 남편이 먼저 일어나 이어폰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와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콧물이 많이 난다는 것이다. 어제도 아이 재우고 밀린 숙제를 하다가 늦게 자서 비몽사몽 간에 대꾸만 해주고 다시 자는데, 휴지를 가져다 달란다. 그래서 가져다주니 코를 막는다. 코를 풀 거냐고 물어보니 싫단다. 그렇게 계속 코를 막고 있다가, 또다시 '이렇게 콧물이 많이 난 건 처음이야' 이런다. 나는 아직도 잠이 안 깨서 코를 풀 거냐고 물어보니 안 되겠던지 벌떡 일어나 아빠한테 가서 코를 보여준다.


코에서는 콧물이 아니고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자다가 코를 파던가 했던 것 같다. 뒤늦게 쫓아 나가보니 처치하는 아빠에게 예전에 코피 났던 기억까지 읊고 있다. 아침에는 엄마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하다 ㅠㅠ) 상황 판단을 하고 움직이는 게 정말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 같았다.


오늘의 산책지 센트럴 파크


이렇게만 지내주면 나는 정말이지 아이에게 바랄 게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아이는 그냥 빛이다. ㅎㅎ 오늘은 남편이 낮에 센트럴 파크 달리기를 나갔다가, 날씨가 좋다고 해서 셋이 같이 센트럴 파크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10분쯤 하고 바로 놀이터로 가서 2시간 정도 놀았는데, 아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평일 오후에 엄마와 나와 노는 일은 드물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맑은 햇살 아래 깔깔거리는 아이와 놀았던 기억은 오래 잔상처럼 남을 것 같다. 아이가 멋지게 자라주는 이 순간순간을 더 많이 함께 하고 기억하고 싶다.


하마 모형 이 닦아주는 딸내미 ㅎㅎ (오늘은 또 파자마 데이였어서 짐옷 치림이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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