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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13. 2023

남편의 프린스턴 하프 마라톤 완주

미국생활 74일 차



오늘은 아침부터 바빴다. 남편이 7시부터 프린스턴 하프 마라톤을 뛰었는데, 완주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와 응원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10년 전에 회사 행사 비슷한 곳에서 하프 마라톤을 엉겁결에 뛰기는 했지만, 마라톤에 취미를 붙인 이후로는 처음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사실 남편은 뭐 하러 오냐는 반응이었지만 아이와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일이 될 듯했다.


어제 아이는 아예 외출복을 입혀놓고 재우고 짐을 바리바리 싸고 자서,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6시 20분에 출발했다. 평소보다 아이를 1시간 정도 일찍 깨워야 했다. 어제 일찍 재워보려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아이는 일어나기 어려워했는데, '어제 얘기한 대로 아빠 달리기 하는 거 보러 가야 해!'라고 했더니 '그럼 뒹굴뒹굴 굴러서 문까지 가자!' 하면서 씩씩하게 일어나 주었다.


처음에는 애가 탔다. 뉴욕 지하철이 예정대로 오지 않아 프린스턴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했던 것보다 하나 다음 걸 탔다. 애초에 왜 새벽에 지하철을 타겠다고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다. 여기 와서 기본 교통수단이 대중교통으로 설정되어 버렸나 보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택시를 타야지... 그래도 원래 살짝 여유 있게 계획을 짰기 때문에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는데, 기차도 10분 가까이 늦게 출발해 버렸다.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늦게 출발한 기차가 예상보다 조금 빨리 프린스턴에 도착하는 바람에 (?) 남편의 완주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나도 힘들어서 아이는 기차에서 내내 동영상 보여주고.. ㅎㅎ


남편이 8시 40분쯤 결승점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 3분 전에 도착했고, 아이와 구경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 사이에 남편이 훅 달려가는 걸 보았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이에겐 보여줄 새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와 통과한 남편에게 달려가 남편을 축하해 주는 건 할 수 있었다. 아이는 어른들에 가려 아빠를 보지도 못해놓고 내가 '아빠 왔다! 가자!!' 했더니, '아빠!!!!'라고 힘차게 외치며 달려가 아빠한테 안겼다. ㅎㅎ


날씨도 좋고오


아빠가 달려오는 걸 5분 정도만 기다렸다가 아빠가 달리고 피니시 라인까지 들어가는 걸 다 보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맞추는 건 어렵다. 영하의 날씨에 아이가 기다리느라 고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서 오늘은 이 정도로 대 만족이다. 그리고 남편이 곧 다른 대회에도 나간다고 하니 기회는 많다.


남편이 함께 출전한 친구집 (남편 친구가 안식년으로 프린스턴에 와 있어서, 남편은 거기서 하루를 잤다.)에 가서 씻는 동안 나는 아이와 프린스턴의 유명 카페 'The Small World Coffee'를 갔다. 잠깐 걷는데도 상가 건물들이 유럽 분위기에 깔끔하고 예뻤다. 카페자체도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아침 9시도 안됐는데 벌써 사람이 많았다


나는 라테, 아이는 펌킨 스콘과 잼을 시켜줬다. 라테는 카페 명성에 비해 너무 별 맛이 없었다. 솔직히 이디야가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카페 분위기가 좋았고, 펌킨 스콘과 잼은 괜찮았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펌킨 송을 아이가 엄청 좋아해서 시킨 펌킨 스콘이라, 그 얘기를 아이와 실컷 하다가 종이접기를 하다가 하면서 아빠를 기다렸다.


오면서 이미 빵 먹었는데, 펌킨 스콘이 나오자마자 커팅하는 딸내미 ㅎㅎ


남편이 드디어 오고는 1시간 조금 넘게 프린스턴 산책을 했다. 건물들이 너무 예쁘고 널찍널찍한 건물 사이사이에 조성된 초록 공간들도 정말 예뻐서, 우리가 프린스턴에 와서 살 일은 없을까 잠깐 생각했다. 아까 잠깐 본 상가 건물이나 여기 학교 건물이나 한결 같이 고풍스럽고 예뻤다. 조경도 잘되어 있고 깨끗한 데다, 뉴욕이나 뉴올리언스에는 굉장히 많은 노숙자들도 없었다. (왤까) 학교 안 조경수들은 대부분 백 년이 넘어 보였다. 굉장히 컸고, 거기서 떨어진 커다란 낙엽이나 나뭇가지도 많아서 아이가 정말 즐겁게 놀았다.


여기도 지원해볼껄 그랬나 ㅎㅎ


산책 후에는 같이 달리기에 나간 남편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로컬의 추천이라 그런지 식당이 꽤 괜찮았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좋았다. 애피타이저로 굴을 먹었는데 새콤한 샴페인 소스가 신선한 굴과 너무 잘 어울렸다. 한 알에 4달러. 우리나라에 가서 굴을 실컷 먹고 오고 싶었다. ㅎㅎ


또 먹고 싶다!


메인도 하나씩 시켰고 나는 라멘을 시켰다. 23달러. 여기 치고는 보통이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역시 비쌌다. 그래도 현지 라멘의 맛과 꽤 흡사했고 맛있었다. 추운데 오랜만에 뜨끈한 국물을 먹으니 더 좋았고. ㅎㅎ



일찍 일어난 아이가 중간에 잠이 들어 20분 정도는 자유롭게 수다도 떨고 좋았다. 직장인 부부인 우리와 달리 그 친구네는 교수 부부라서 새로운 얘기들이 조금 있었는데, 육아 얘기를 하니 바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프린스턴에 왔으니 아이스크림을 안 먹을 수 없었다. 자는 아이를 (남편이) 둘러메고 근처 아이스크림 맛집으로 갔다. 피스타치오 마스카포네를 먹었는데, 피스타치오의 은은한 고소함과 마스카포네의 부드러움이 잘 조화돼서 좋았다. 한 입 뺏어먹은 남편의 마스카포네는 약간의 스파이스가 들어갔는데 그게 킥이 돼서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왜 맛집인지 알 것 같았다. 프린스턴은 커피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다.


이것도 또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잠시 근처 상점가를 살짝 보았다. 주로 브랜드샵들이라 굳이 여기서 쇼핑할 건 없었다. 그냥 상가 건물 자체들이 고풍스럽고 예뻤다.


남편 친구 말로는 부자 동네가 맞단다.


아이와 놀이터에 가서 40분쯤 놀다가, 학교 기념품 샵에 갔다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6시 조금 넘어 나섰는데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그렇게 바쁘게 다니진 않은 것 같은데도 피곤했다. 이제 대중교통으로 근교 하루 당일치기도 함께 다녀오는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다 키웠나 싶고. ㅎㅎ


저녁은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남편을 위해 아껴둔 LA 갈비로 대충 갈비찜 비슷한 걸 만들었다. 미국엔 LA갈비가 흔할 것 같지만, 한인 타운에 가지 않는 이상 만나기 힘들다. 한번 사놓고 냉동고에 잘 보관하고 있던 걸 이번에 꺼냈다. 여기서는 음료수도 안 사 먹는 우리인데 큰맘 먹고 우버 이츠로 와인도 시켰다. 우연하게 와인 배달이 되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 일이라 신기했고, 경험 삼아해 봤다. 저녁 식사에 와인 한 병 있는 걸로 기분이 달라지는 데다, 배달이 되니 편해서 가끔 해볼까 싶었다.


엄청 간결한 재료로 대강 만든거지만 맛있었다!


브레드 앤 버터 피노누와를 시켰는데, 한국에서는 3만 원 대 중반인데 여기는 팁까지 다해서도 2만 원대 후반이었다. 역시 현지 주류를 마셔야 한다 ㅎㅎ 남편도 맛있다며 만족해했다. 전에 다른 집 놀러 가서도 카멜로드 피노누와를 먹고 둘 다 마음에 들어 했어서, 앞으로는 미국 피노누와를 주력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미국 주류도 좀 더 마셔보고 싶었는데 기왕이면 한 가지 테마를 잡아놓고 마시면 더 자세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틈틈이 노느라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데, 그래도 노는 게 참 재밌다. (남편도 저녁에 이번 프린스턴 여행은 대성공이라고 해서 기뻤다. 괜히 인정받은 느낌 ㅋㅋ) 앞으로도 분발해서 공부하고, 시간 만들어서 열심히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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