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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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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19. 2023

늦깎이 엄마 대학원생이라는 소수성

미국생활 80일 차



우리 과는 학사를 졸업하고 바로 오는 경우가 많고, 일하다 왔다고 해도 대부분 2-3년 경력이다. 그래서 동기들 대부분은 10살 넘게 차이가 난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언어 장벽도 있고, 시간이 나면 가족들에게 달려가거나 해야 할 일을 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다. 수업 시간이 바뀌어도 혼자 모르고 수업에 가거나 할까 봐. ㅎㅎ 그래도 생각보단 잘 지내고 있다. 동양인이라 다들 20대 후반쯤으로 봐줘서 (!!) 다른 늦깎이 학생들보다는 장벽이 덜 한 것 같고, 살갑게 굴기도 했다. 사실 내가 뭘 물어보면 물어봤지 도움을 줄 일은 없어서, 살갑게 굴거나 도움 줄 수 있을 때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과제든 정보든 경험담이든.


몇 번을 물어보고 다시 풀고 했는지 종이가 다 벗겨질 지경이다 ㅋㅋ 함정은 이건 기본 수학 연산 능력만 있음 되는 쉬운 문제라고 내줬는데, 그 기본 능력이 내게 없다…


처음에는 한참 어린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동기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귀엽거나 안타깝게 여겼던 후배들 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들인데도 그렇다. 회사에서랑은 다르게 내가 경력이나 지식이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험난한 1년 압축 과정을 헤쳐 나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외로울 때가 있다. 동기들 사이에서 절친한 친구가 없는 건 전혀 상관없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공감하며 얘기할 친구가 없는 건 가끔 아쉽다.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다르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안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어제는 동기들 채팅창에서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에 대해 한바탕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비슷한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고 사람들과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종종 있지만, 동기들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고 좌절이 너무 깊어서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주변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실망감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서 타격감도 덜한데 ㅎㅎ 다음 커리어를 고민할 때도 고민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나이 차이와 경력 차이를 느낀다.


이런 이야기가 한바닥. 요 마음들이 오래 잘 가주면 좋겠다


반대로 말해서, 나랑 비슷한 나이나 경력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와 달리 비슷한 시선에서 생각하고 얘기할 사람들이 없다. 그리고 한국의 친구나 동료들과는 시차나 물리적 거리감이 생겨서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하더라도 카톡으로 안부 인사나 하는 정도라 얘기를 이어나가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고민 지점이 조금 다르기도 하고. 가끔 나이 든 유학생들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아빠라서 다르다.


한국에서 나는 수만 명 직원 중 한 명이었고 회사 어린이집 다른 모든 엄마들처럼 워킹맘이었는데, 여기서는 특이하게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졌고, 유일하게 한국에서 왔고, 독특하게도 아이도 있는 유일 무이한 사람이다. 잘 어울리고 있지만 때때로 외롭고, 프로그램에서 준비한 이벤트들도 참여하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은 아니다. 예를 들어 커리어 관련 이벤트는 대부분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커리어 초기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요즘엔 이런 이벤트는 그냥 먹으러 가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난 대부분의 경우 항상 다수의 일부였는데, 여기 와서 소수의 입장이 되어 본다. 차별이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소수자는 정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딱히 외로운 건 아닌데, 친구들과 얘기하던 건 간혹 그리울 것 같다. 사실 오늘 처음 이런 생각을 했다. 맨날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며 정신없이 지내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이랑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식당에 갔던 날, 서로 감상을 나누다가 남편이 '(돈이 많이 들어서 뉴욕에 같이 오길 주저했는데) 같이 오길 잘했다. 혼자 밥 먹으면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얘기할 곳도 없고 너 외로웠을 것 같아.'라고 했다. 그때는 '혼자 왔음 혼자 온대로 더 신나게 놀았을 수도 있어' 하고 받아쳤었는데, 그래도 가족들이 같이 안 왔으면 좀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랑 집 근처 이티오피아 음식점에 갔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여기 와서 유일하게 우리 둘이 외식한 거다. (학식 제외) 우리 진짜 고학생 부부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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