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82일 차
요즘 링컨센터에서는 Fall Gala 가 진행 중이다. 링컨센터 정기 홍보 기간 같은 느낌인데, 기부 행사도 열고 'Pay what you want'라고 원하는 만큼 지불하고 살 수 있는 프로그램도 몇 개 운영하며 대중을 상대로 행사도 하고 있다.
단순히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딱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공연의 수준이 높았다. 필립 글라스라는 작곡가의 피아노 etude를 다섯 연주자가 각각 두 곡 씩 연주하는 시스템이었고, 중간중간 MET의 오페라 가수가 나와 간단히 사회를 봤다. 사회자부터가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연극적이라 재밌었다.
공연자들은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된 재즈 음악가부터 카네기 홀 연주자까지 다양하고도 수준이 높았는데, 같은 작곡가의 곡이지만 연주자마다 스타일이 진짜 달라서 흥미로웠다. 첫 두 연주자는 피아노랑 연인이 된 느낌이었고, 세 번째 재즈 연주자는 같은 작곡가의 같은 스타일 곡인데도 재즈 같이 연주했고, 네 번째 연주자는 굉장히 어둡고 침울하게, 다섯 번째 연주자는 꿈같은 연주를 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연주자들의 감정이나 표정이 더 와닿았다. 당연히 뒷 쪽 어느 자리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대 바로 앞 첫 줄이었다. 전혀 기대를 안 해서 처음에는 자리를 못 찾았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은 못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음악회에 가면 오만 잡생각이 든다. 딱히 감상도 아니고, 조모임이나 숙제나 다음 여행 같은. 명상할 때가 오히려 잡생각이 덜 든다.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모르는 건지, 음악에 관심이 덜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음악회에 오는 건 좋아한다. 평소에 전혀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리프레쉬가 되고, 음악을 들으며 잡생각들을 떠올렸다가 흘려보내다가 하다 보면 명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공연을 마치고는 샴페인과 쿠키도 줬다. 여럿이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아는 언니랑 같이 올 계획이었는데, 그 언니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갑자기 못 오게 된 게 새삼 아쉬웠다. 남편은 어차피 번갈아 가며 아이를 봐야 해서 못 오지만, 누구랑이든 같이 공연 감상을 나누면서 샴페인을 마셨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하지만 혼자서도 좋았다. 손에는 샴페인이 있지, 바깥에는 링컨센터의 분수가 보이지, 화려한 꽃장식과 멋진 음악에 둘러싸여 있지.
어제였나, 유튜브 뮤직에 한 플레이리스트 제목이 '뉴욕 감성 ~' 길래 비웃었었다. 남편한테 웃으면서 '나한테 뉴욕 감성은 찌린내야'라고 얘기했었다. (남편은 '나한테 뉴욕은... 비싸' 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뉴욕 감성도 있었다. 잊고 있었네. 아이랑 다니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가끔은 이렇게 어른의 문화생활을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