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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10. 2024

쿠퍼 휴잇 뮤지엄_일상 속 아티스트들

미국생활 143일 차



쿠퍼 휴잇 스미소니언 디자인 뮤지엄에 다녀왔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사실 이곳보다는 MOMA나 자연사 박물관을 N차 방문할까 싶었지만, 오늘 남편이 지속적인 컨디션 저조로 외출 불가를 선언했기 때문에 남편이 나의 리스트 중 관심 없다고 선언한 이곳을 방문했다. (아무래도 임산부인 나보다 남편의 체함이 더 오래가는 건 둘째 충격 때문인 것 같다. 요새 내내 남편이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ㅎㅎ)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다


그렇게 딱히 기대를 하지 않고 갔고 가는 중에 본 전시 리스트에도 크게 혹하지 않은 데다 입장할 때는 관람객이 나 혼자라 계속해서 기대가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알찬 박물관이었다.


첫 전시는 무대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Es Devlin의 전시였다. 레이디 가가, 비욘세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굉장히 많이 했고, 기후 변화나 멸종위기종 관련 공간 전시도 한다고 했다.


2020년 MTV 무대 디자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전시 시작이었다. 올라가자마자 나를 작은 작업실 모형의 전시실로 이끌더니 짧은 영상을 보며 시작한단다. 영상이 계속 상영되는 형태가 아니라 내가 그 층에 올라서자마자 직원이 나를 안내해 전시실로 이끌고 내가 앉으니 전시를 시작했다. 약간 얼떨떨하게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책상 위의 책들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다 보니, 앞의 흰 벽면에 짧은 영상이 상영되더니 작가의 추구하는 바가 작가의 목소리로 소개되고 마지막엔 작가의 손이 화면을 여는 듯한 동작을 취하더니 정말 화면이 열렸다! 전시의 내용을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음에도 대번에 내가 무대 디자이너의 전시에 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작업 테이블 앞에 앉아 앞을 보다보면 누군가 작업을 하고, 나중에 저 손이 벽을 연다.


유명한 디자이너라더니 '요즘 무대' 같은 느낌의 디자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무대 디자인에 대한 전시는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고 와닿지 않으면서도 ㅎㅎ 그 나름대로 새로웠다.


전시 중에 'As a designer of temporary spaces, she views theater as an architecture of the imagination' (임시적인 공간들의 디자이너로써, 그는 공연장을 상상의 건물이라고 본다.('상상의 건물' 부분은 아마 상상을 이룰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아마 의역될 것 같다 ㅎㅎ))라는 표현을 봤는데, '임시적인 공간들의 디자이너'라는 자기규정이 부정적인 느낌이나 허무함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새로움으로 이어지는 게 인상 깊었다.


마지막 줄이 윗 단락의 내용이다.
위 설명 옆의 전시물들



이 문구가 더 인상 깊었던 건, 그가 기후변화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개인적인 역할을 이어가는 모습을 전시를 통해 보면서 '(한번 쓰고 폐기되는) 임시적인 공간의 디자이너'로써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으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에는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이 함께 하고 있구나 싶었다.


런던의 상징적 공간에 런던에 사는 동물들을 입혀 보여줬던 공간 전시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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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티스트와 직업에 대한 생각은 어제부터 이어져왔다. 어제는 잠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었다. 주로 아이를 어린이 공간에 놀리기 위해서였지만 남편과 짧게 번갈아 전시를 봤다. 나는 로댕 전시가 모여 있는 홀을 20-30분 집중해서 봤는데, 로댕 전시 중에 진짜 로댕 같지 않게 튀는 작품이 있었다.


요거다


설명을 읽어보니 로댕이 너무 가난해서 어떤 상업용 조각 판매상과 일할 때 만든 작품인데, 로댕이 후에 인터뷰에서 그 판매상과 한 작업은 어느 하나 즐거운 게 없었다고 했다. 로댕쯤 되면 모든 작품에 혼을 쏟아 넣을 것 같은데 로댕조차 돈 때문에 한 일은 재미없었구나 싶었다. ㅋㅋ


이런 작품들 속에서 위 작품은 튀어도 너무 튀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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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텍스타일 아티스트 Dorothy Liebes라는 사람의 전시가 이어졌다.



앞의 전시와 전혀 다른 업계의 사람이었지만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 일상에 긴밀하게 연관된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자기 분야에서 굉장히 새로운 탐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업계에서 영향력이 아주 높았고 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든 작품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지만, 대중에게 이름은 딱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연결점으로 두 전시를 함께 배치했나 싶었다. 멋진 구성이었다.


텍스타일도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앞의 전시와 마찬가지고 똑같이 처음이라 낯설고 와닿지 않으면서도 그래서 새로웠다. ㅎㅎ 유리의 값이 떨어져서 건물들에 유리창이 많이 생기는 걸 보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라고 여겼다는 점이 멋졌다.


이 박물관을 방문하면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건물 그 자체다. 카네기가가 거주했던 이 건물은 (!) 건물 자체로 굉장히 멋지다. 전시실을 올라가는데 옆의 나무 벽 한 칸 한 칸이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굉장히 자연 마블링이 잘된 하나하나의 예술품들이었다.


계단 앞에 보이는 저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제각각의 문양이 이렇게 멋지다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이 상영되는 방은 '티크룸'이라고 불리는 온통 티크로 인테리어 된 방이었다.


이렇게 영상을 보다 옆을 보면…
인도에서 들여왔다는 이런 작품이 멋진 바닥 위에 더 멋진 벽 앞에 서있다
이걸 어떻게 팠지…


예술을 잘 모르는 나도 지나다가 창문 잠금쇠 하나에 발걸음을 멈추고, 벽에 아무렇지 않게 있는 벽난로에 사진기를 들이댔다. 잠깐 도슨트를 들었는데, 이 건물은 (적어도 20세기 초였을 텐데) 부엌에도 전기 오븐을 썼다고 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있를 벽난로가 아닐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시간 여유가 있는 로컬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전시를 본 듯했다. 여유롭게 뉴욕을 누리기. 바로 내가 바라던 겨울 방학이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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