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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12. 2024

Going Dark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생활 144일 차



예정에 없이 현대 미술관인 구겐하임에 다녀왔다. 원래 우리 부부는 현대 미술에 문외한이라 여기는 제 돈 주고 가기보단 금요일 저녁에 원하는 만큼만 내고 입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가고, 오늘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MET 개관 여부를 미리 확인을 안 하고 온 바람에 본의 아니게 옆에 있는 구겐하임을 가게 되었다.


저 원통형 건물이 핵심이다.


건물은 진짜 멋졌다. 오픈 시간을 기다리면서 건물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봤는데 굉장히 독특한 곳이었다. 원통형의 건물이 이 미술관의 중심이 되는데, 그 부분은 꼭대기부터 로비까지 층 구분 없이 나선형으로 쭉 내려오는 동선이라, 작품을 볼 때 방마다 찾아다닐 필요 없이 계속 이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관련 내용은 6:30 부터)



다만, 원래 건축가의 의도는 쭉 걸어 내려오면서 편하게 보는 거지만, 실제 전시 구성은 (아마 엘리베이터 캐파의 한계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보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차피 현대 미술은 잘 모르기 때문에 큐레이터보다는 건축가의 의도를 따라, 제일 처음에 엘리베이터로 꼭대기로 올라가서 내려오며 전시를 보기로 했다.


덕분에 전시 제목인 'Going Dark'만 알고 무작정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 내내 흑인 얼굴이나 모습을 나타낸 작품들이 이어지는 걸 보면서 전시의 대략적인 의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ㅎㅎ 일단 설명을 읽지 않으면 작품에 대해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현대 미술을 아는 것도 아니고,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를 아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현대 미술에 대한 영문 설명은 너무나도 읽기 고통스러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후드 모자를 높이 걸어놓은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만 지키는 단독 경호원이 있었고 그 경호원이 작품 가격이 6백만 달러 (약 78억 원)이라고 알려줬다. 가격이 잊히지가 않았다.



결국 나와 남편은 고통받다가 1시간도 안되어 카페로 빠졌다. 카페는 좋았다. 통창 너머로 센트럴 파크가 내다보였고, 말차라테는 별로 달지 않고 진했다. 어차피 둘 다 전시는 거의 포기했겠다 남편과 실컷 수다를 떨었다.


창 너머로 센트럴파크 호수가 보인다


남편은 여기와 서야 우리가 한국에서 주류였음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수입이 없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예를 들어 오늘 같은 실패가 지금의 우리에겐 굉장히 뼈 아프다. 둘이 합쳐 입장료만 5만 원이었다. (원래는 훨씬 싸게 올 수 있는 옵션도 있었는데, MET의 휴관도 예상 못했고 입장료도 그 절반으로 잘 못 아는 바람에 잘 못된 선택을 했다.) 우리가 수입이 있어도 5만 원은 큰돈이긴 하지만 털어낼 수 있는데 지금은 조금 더 뼈 아팠다. ㅎㅎ 사람이 돈이 없으면 소심해지는 것 같다.


이런 도시가 사람을 얼마나 소외시키는지도 얘기했다. 극도로 효율적으로 분업화가 되는 게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고, 소외시킬 수 있는지. 노숙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극단적인 예고, 본인도 이런 시스템은 안 맞는다고 했다. 조금 덜 분업화되고 조금 더 내 손으로 하는 게 많은 사회로 가고 싶다고.


전시를 거꾸로 본 탓에 미술관을 나서면서야 전시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흑인 인종 차별에 대한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전시라고 했다. 그럼 오늘 우리가 한 대화랑도 결이 맞았다. 그래도 전시를 보고 무의식 중에 뭔가 연결돼서 그런 대화가 나왔던 건가 싶었다. (남편은 아니라고 확언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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