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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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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15. 2024

MOMA로 잘 때운 하루

미국생활 147일 차



주말이면 늘 뭘 해야 할까 고민이다. 우리도 한국에서는 문화센터를 갔고 여기서도 다른 애들은 학원에 가는데, 딸내미는 영어 때문에 아직 그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우리와 치대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는 주말에도 플레이데이트를 많이 하는데 여기서는 주말은 안 하는 분위기고.


오늘도 뭐 하나 싶었는데, MOMA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는 게 있어서 냉큼 갔다. 아이들에게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게 해 보는 프로그램인데, 사실 전에 조각을 주제로 했을 때 아이랑 같이 갔는데 별로 좋아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가면 다른 놀이 공간도 있고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일단 MOMA로 향했다.


패밀리갤러리톡스 라는 이름의 프로그램


지난번 프로그램을 다녀온 지 3달은 넘은 것 같은데 딸내미가 도착하자마자 귀신같이 '나 여기서 한 거 별로 재미없었는데'라고 했다. ㅎㅎ 이번에는 다른 내용이라고 잘 구슬려서 들어갔다.


주제는 '자연'이었고 자연을 담은 회화 작품들을 소개하고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액티비티를 했다. 예를 들어 (나의 최애작인!!) 모네의 수련 앞에서 여러 가지 색깔 카드를 나눠주고, 그 색깔을 작품 안에서 찾아본 후, 그 색깔이 무슨 모양을 나타내는 걸지 얘기해 보고,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대화를 하는 형식이었다.


딸내미는 모네 그림 색감에 따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림 카드 배치 중이다. 진지함 ㅎㅎ


아이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는 못 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잘 즐기고 있었다. 나도 좋아하는 작품들 앞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게 좋았고. 다만 오늘따라 새벽에 일어난 아이가 피곤했던지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는 사이 안아달라고 하더니 바로 잠들어 버려서, 중간에 하차를 해야 했다.


그래도 덕분에 남편도 나도 잘 쉬었다. ㅎㅎ MOMA 내의 카페에 소파 자리를 잡아서 아이를 눕혀놓고, 남편은 핸드폰을 하며 쉬고 나는 다른 엄마가 추천해 준 전시를 보고 왔다.


뻗음 ㅎㅎ 소파자리 잡아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 구겐하임에서 현대 미술에 데고 오긴 했고 이걸 추천해 준 엄마는 현대 미술이 전공이긴 하지만, 이제 개강도 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었다. 그리고 전시는 예상외로 재밌었다!


전혀 복잡하지 않았고, 위트가 있었다. 특히 기름통 뚜껑에 "I can't find my keys nowhere"라고 써 놓은 작품은 내가 본 현대 미술 중 가장 공감이 갔다. 심지어 원통형으로 그려서 문구가 무한으로 반복되도록 했다는데, 핸드폰도 안 터지는 국립공원 가서 렌터카 키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나서 공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저리다 ㅠ ㅋㅋ


갈기갈기 찢어진 성조기를 그려놓고, 트럼프 당선 1년 후 그린 그림으로 평소에는 정치적인 내용을 그리지 않지만 이 그림은 정치적이라고 적어둔 것도 재밌었다.


최고 진지 모드였던 그림 중 하나 ㅎㅎ


역시, 안 맞는 것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의외로 잘 맞을 때가 있다. 그런 낮은 가능성을 위해 자원을 쓰는 건 가성비가 안 나오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해 볼 필요가 있다 ㅎㅎ


전시를 다 봤을 즈음에 아이가 딱 맞게 깨어났다. 카페에서 조금 더 역할 놀이를 하면서 놀다가, 만들기 팝업존과 상설 키즈 아트존에 갔다. 여러 가지 만들기 재료나 놀이 도구가 많아서 2시간 넘도록 재밌게 놀았다. 아이가 새로운 곳에 정신이 팔리니 우리도 집에서 놀아주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뭘 만든걸까 ㅎㅎ


오전 11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는데 6시가 다되어서야 들어왔다.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 없이 우리 셋 다 즐겁게 보냈다. 그것도 공짜로! (아이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한다. 티켓을 살 필요가 없고 심지어 나중에 아이랑 같이 오라고 패밀리 티켓을 하나 준다!) 이럴 땐 진짜 뉴욕의 문화적인 힘을 느낀다.


아이가 하는 활동이 저 위에 스크린에서 보인다. 여기서도 한참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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