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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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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21. 2024

인종 차별

미국생활 153일 차



오늘은 딸내미 반 레일라와 그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레일라는 아빠는 자메이카 이민자고 엄마는 백인이라 흑백 혼혈이다. 그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9년 후에는 자메이카로 이사를 갈 거라고 했다.


레일라 아빠는 학교에 애 등원 시키러 가면 선생님들이 다 인사하고 지역 언론 인터뷰도 하는 고위 공무원이다. 자메이카에 가면 일도 다시 구해야 할 텐데 왜 자메이카로 이사를 가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한참 클 때 메이저로 크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내심 놀랐다. 차별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게 다른 나라로 이사의 이유까지 될지는 몰랐다. 레일라 엄마는 흑인들이 대통령도 되고 티브이에도 나오고 전문직도 많고 해서 아닌 것 같지만, 흑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차별이 많다고 했다.


어쨌거나 아이스크림 앞에서 마냥 신난 아이들. 너희가 계속 신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ㅎㅎ


그러고 보니 레일라 아빠가 학생 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는데, 역시 어이없게도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누명을 썼다는 게 증명되어서가 아니라) 풀려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레일라 아빠는 9년만 있으면 연금이 나오는데, 월급의 60%를 죽을 때까지 받기 때문에 그 돈으로 자메이카에 가면 충분히 아이들 국제학교 보내고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이 이유도 큰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도 마음이 좀 안 좋았다.


차별받는 그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그 차별이 우리를 향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식당을 예약하고 갈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곤두선다. 한 번은 굉장히 미리 예약했음에도 비상구와 직원 카운터 근처의 추운 자리를 배정받았고, 한 번은 급하게 예약한 거긴 하지만 메인 홀이 아닌 구석 룸을 받았다. 우리 말고 다른 한 테이블이 더 있었는데 거기도 중국인들이었다.


두번째 식당 메인 홀. 복작거리긴 하지만 더 개방적이다
우리 룸은 딱 유명 전망대가 내려다 보이는 뷰긴 했지만 방 자체는 되게 작았고 메인 홀보다는 별로였다.



첫 번째 식당에서는 얘기했더니 자리를 바꿔주었고, 두 번째는 구석 룸도 뷰가 좋긴 했고 워낙 늦게 예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각한 적 없는 일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여기서는 다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산다고 하지만, 미묘한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같은 아시안은 백인들보다는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주변을 신경 쓰는 것보다는 덜할지도  모른다는 건 함정이지만.)


우리가 미국으로 나올 때, 남편의 블로그 지인 중 하나가 '메이저로 살 수 있으면 미국이 좋죠'라고 했는데, 그 말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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